첫 번 째 이별

도망치지 않았어

by BoNA

1.

아이의 행동은 가정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 그 안에서 모두가 지쳐갔다. 남편은 몸이 부서져라 아이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려 노력했고 이상행동을 다 참아냈다. 아버지에게 할 수 없는 심한 언어폭력들과 왜 낳았냐는 협박, 낳았으니 책임지라는, 끝까지 고통 속에 살자는 주술 같았던 말들을 매일 반복했고 남편은 고문과 같았던 고통들을 참아냈다. 남편의 얼굴은 새까맣게 변해갔다. 우울증 관련 서적을 찾아 뒤지고 카페에 가입해 바늘구멍이라도 찾아내려 애를 썼다.


딸아이는 말 수가 줄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게 미안했다. 우리가 참자. 가족이 함께 이겨내자. 나 역시 딸아이를 옥죄고 있었다. 13살 소녀에게 가족의 의미가 과연 이해가 되었을까? 가족이라 함께 견뎌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었을까? 딸아이는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나는 딸아이를 대피시켰다.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랐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했다. 아무에게도 나의 이 고통스러운 삶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도 위로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죽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증상이 격해질수록 나는 죽어가고 급기야 죽고 싶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가장 쉬운 회피가 모든 것을 마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도 가정도 타들어 갔다. 멍하니 저녁을 준비하던 오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나에게 최고의 기쁨을 주었던 10여 년, 이제 고작 1년 남짓 고통스러웠는데 그러고도 내가 엄마일까? 내가 잘못 키웠을까? 몹쓸 유전자를 전달했을까? 혹시 키우면서 내가 뭘 잘못억였을까? 나의 언어 습관이 잘못되었을까? 학원에 안 보내고 홈스쿨링 시킨다고 집에서 문제집 풀리던 게 잘못되었나? 하기 싫은 운동 극성스럽게 시킨 내가 잘못이었나? 하나에서 열까지 혹시 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결혼 생활, 그저 왕관을 쓰고 싶어 아이를 원했고 아이를 통해 왕관을 쓰고 마냥 행복했던 10년이 1년 만에 모두 문드러졌다. 하지만 엄마의 본성이며 신이 내밀어 주신 마지막 손길인지 정신이 차려졌다. 정신 차리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우울증 환자로 대면했다.

기분을 살피고 아이를 참아냈다. 아이를 바라보는 자체가 힘들었지만 아이의 폭풍 같은 쏟아냄을 듣고 나면 밖으로 나와 실성한 여자처럼 울어댔다.


2.

아이의 병을 인정하고 관련 서적을 남편과 함께 읽었다. 그러다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 아이는 우울증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우울한 기재가 있었지만 우울증과는 다른 증상들을 계속 보이고 있었다. 늘 우울하지 않고 이삼일 흥분되어 밖으로 나갔다. 때로는 잠시 정상으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다시 우울하다. 그러던 찰나 아이가 병원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했다. 진료를 받고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사 선생님의 상처가 느껴졌다 했다. 의사인 아버지와 의대를 가지 못하고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상담사 선생님의 고통에 자신의 답답함을 털어놓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런 판단을 하는 아이가 막연히 지능이 높아서 그런가 싶었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몰랐을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우울증으로 그 요동치는 아이의 행동들을

억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병원을 옮기고 조울증이라는 병명을 다시 진단받았다. 양극성장애 2형. 나는 이 날 모든 것을 잃었다. 그냥 생명이 붙어 있는 죽은 목숨이었다. 정확한 병의 원인도 모르고 증상은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을 하며 충동적인 행동 패턴과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먼 증상들. 아이는 보통의 것들과 멀어졌다.


약물치료가 시작되면서 아이가 조금 안정을 찾기 시작되었다. 무기력해 보였으나 한 밤에 한강을 걷는 일들이 줄었다. 대신 방 안에서 나오는 횟수가 줄었다. 여전히 대학진학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하루를 견디어 내는 것이 괴로워 보였다. 나는 여전히 조울증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과 본인의 의지의 문제이니 그 의지만을 돌리려 시시때때로 삶의 의미에 대해 의미 없는 이야기만 던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자식이 없어 자식처럼 이뻐했던 여동생에게 아이이야기를 했다. 동생도 나도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처음의 위로였다. 나 살고 싶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고 동생이 아이를 만났다. 아이와 저녁을 먹고 대학을 가라고 설득을 했다. 전문대도 좋으니 고졸증명서와 대학 입학서만 받자. 아이를 잘 설득했다. 아이는 수능접수를 했다. 공부의 양은 첫 모의고사에 머물러 있었다. 대학에만 입학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즐겁게 그 사회 안에서 치료되어 지기를 바랐다.


아이는 약물치료와 함께 조금 안정된 상태로 수능을 치렀다. 다행히 성적이 나쁘지 않아 대학에 입학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 학과를 졸업하면 밥벌이를 충분히 했다. 2형이라 다행이다 마음을 쓸어내렸다. 아이가 미래에 대해 생각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고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고 대학에 간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3.

온라인 오티에 참석을 하고 내일이 입학식이었다. 며칠 전부터 불안했다. 아이의 행동이 들쑥날쑥했다.들쑥날쑥 했다. 하룻밤을 지나고 입학식 아침 어젯밤 온라인으로 자퇴 서류를 냈으니 입학금이라도 일부 돌려받고 싶으면 동의를 하라고 통보를 했다. 이미 내버린 서류 오늘이 입학식인데 하늘도 무심하지 말없이 아이의 뜻에 따랐다.


다시 지옥 같은 날들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이제 조금 더 강력해져 성인이라는 증명서를 구비하고 통제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술과 담배는 선천적으로 혐오했던 아이가 자꾸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 약을 먹을 수가 없다. 그러면 증상은 심해지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동생에게 다시 한번 부탁을 했다. 나와는 단절된 대화를 해 달라고 애걸을 했다. 동생의 찬스는 여기까지였다. 동생은 아이와 이야기를 했고 아이는 다시 한번 이모에게 마지막 예의를 보였다.

8월 말 수능 접수를 했다. 남은 기간 동안 조증이 심할 때 공부를 했다.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우울증이 들 땐 아무것도 안 하고 쉬었다. 피시방을 갔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다. 상위 두 대학의 어문, 철학에 지원할 점수를 받았다. 믿기지 않았지만 병의 증상 중 하나이다. 지독한 습득력과 이해력. 잠을 자지 않고 지식을 흡수해 버린다. 단 관심 있는 분야만.


아이는 두 명문학교를 배제하고 다른 학교의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아이가 철학을 공부하길 바랐다. 철학을 공부하며 자신을 돌아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운명은 늘 나를 패배자로 만든다. 아이는 경영학과에 진학을 결심하고 이 번에는 자퇴를 하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 오티를 가고 신입생 환영회를 가고 학교를 다녔다. 한 학기가 지나가며 이 아이가 다닌 학교에 수업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과목은 F를 받았고 나머지 과목은 병결로 대체했다. 자신의 진단서를 각 과목 교수들에게 뿌렸다. 몇몇 교수들은 동정을 몇몇 교수들은 배제를 했다. 그렇게 1학기가 지나갔다.


4.

2학기는 휴학이다.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일을 하고 싶다고 했고 자취를 하고 싶다고 했다.

조울증 증상을 앓고 있는 아이가 혼자 살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불면의 밤이 며칠 지속되었다.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이미 아이는 짐을 꾸리고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집을 정하고 이사를 했다.


제발 이 집에서 독립심을 키우기를 부모의 울타리를 절실히 느끼기만을 바랬다. 나와 남편은 최선을 다했다. 가끔 우리가 전화를 하면 잘 지낸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고 과외를 한다고 했다. 수능 때 사회과목 두 과목을 만점을 맞아서 그 부분을 공략한 것 같다. 아이가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우리에게 가져가는 돈은 늘 부족했고 돈에 허덕였다. 용돈을 가불해 가기가 일쑤였고 매일 돈이 없다고 징징거렸다.


매달 사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아이는 소비욕이 과도했다. 이 또한 병의 증상이다. 우리 부부는 달마다 합의를 해야 했고 걱정은 늘어만 갔다. 방법이 없었다. 약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치료에 진전이 없는 듯 증상은 피크에 달했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지니 잠시 편안했다. 밤마다 잠도 안 자고 집안에서 딸그락 거리는 거대 쥐가 한 마리 없어지니 나의 불면의 밤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돈이 단 일원도 통장에 남지 않은 채 그 해 겨울이 왔다.

이별을 해도 이별할 수 없는 운명의 쳇바퀴 안에서 신을 원망할 힘도 바닥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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