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의 질주

걸어서 세상을 달렸어

by BoNA

1.

아이의 들쑥 날쑥한 날들에 나의 이성도 춤을 추고 있었다. 세상 끝까지 따라가 아이를 살게 해야지 하는 굳은 의지와 당장 내일 함께 죽고 싶다는 양가적 감정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가득 담겨있었을 것이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휴학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혹 집터가 이상해서 그런가 이사도 했고, 아이의 이름도 바꿨다.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냥 할 수 있는 건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을 빼고는 다해보려 애썼다.


딸아이는 기숙학교로 갔고 가끔 집으로 올 때마다 오빠와 부모의 폭풍 속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속이 깊은 아이로, 제 나이와는 다른 이해심을 가진 아이로, 늘 오빠를 이해해야 하는 동생이 되어있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잘 해내고 있었다. 물론 때 한 번 부리지 않고 자라는 아이가 안타까워 모든 것을 허용했지만 절대 낭비하지도 여분도 가지지 않았다.


매사에 그랬다. 필요한 것 딱 하나만. 딸아이의 선택이었고 존중했다. 딱 한 번 아이가 강력히 거절을 했던 때를 기억한다. 오빠를 위해 승합차로 바꾸고 주말이면 산과 들로 나갔다. 혹시 자연이 치료를 해 줄까 기대했다. 하지만 항상 돌아올 때면 오빠의 폭풍 속에서 한 번도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이런 여행에 염증을 느꼈는지 딸아이가 간곡히 부탁했다.

" 엄마 우리 가족여행 가지 말아요. 저는 더 이상 못 가겠어요."

그 뒤 우리는 넷이 떠나는 여행을 하지 않았다.


2.

방안에 계속 머무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다. 폭발 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노심초사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다. 며칠을 방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가족들은 또 불안했다. 이 숨 막히는 고요를 지켜보는 고통은 설명이 안 된다. 3일 만에 저녁시간에 나와 배가 고프다고 치킨을 시켜달라고 한다. 원하는 것을 주문해 줬다. 이렇게 3일의 침묵을 깨고 만난 진실은 처참했다.


"엄마, 어제는 잠실대교까지 걸어갔었어. 걷다 보니 나 같은 사람들이 몇 명 있더라.

그제는 여의도 쪽으로 걸어갔었어. 밤에 걸으면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데 집중도 잘 돼.

보통 2시쯤 나와 2~3시간 정도 걸어. 편의점에서 라면도 사 먹었어."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걷는 건지, 걷다 보니 상황을 외면하게 되는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다만, 내가 왜 새벽 2시의 인기척을 못 느꼈을까의 죄책감만 들뿐이었다. 나는 계속 깨어있어야 한다. 아이를 지키려면 계속 깨어 있어야만 했다.


겁이 났다. 슬리퍼를 끌고 갔는지 운동화를 신고 갔는지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밤에 걷는 아이를 생각하니 딱하고 안쓰러워 무서웠다. 두려웠다. 나와 딱히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으로 나에게 꺼내놓는 이야기를 놓치지 말아야 했다. 아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까? 이 병은 유전적인 원인이 크다는데 내가 잘못한 것일까? 그렇담 어떻게 이 상황에 죗값을 치러야 할까? 내가 대신 고통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의 밤을 보내다 드디어 문소리를 들었다. 아이다. 아이가 나간다. 조심스레 아이의 뒤를 따라간다.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듣다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다. 여느 평범한 대학생 같았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정상적인 청년, 저 앞에 나의 아이가 걸어간다.


3.

한참을 걷다 신사역 사거리에 도착했다. 갑자기 아이가 신발을 벗는다. 신발을 벗고 도산대로 쪽으로 걷는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니 지금도 신기루처럼 믿어지지가 않는다. 신발을 벗고 달리지도 않고 걷는 나의 자랑이었던 아이. 나의 전부였고 나의 위로였던 아이. 그 아이가 내 눈앞에서 맨발로 걷는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달려왔다. 아이를 멈춰 세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는 차에 탔다. 신발은 내가 챙겼다. 본인은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새벽 4시쯤이었다. 아이는 방에 들어갔다. 남편과 나는 귀신에 홀린 사람들처럼 그렇게 그 밤을 견디었다.


가끔 신경질적으로 옷을 사내라고 짜증을 부리고, 밤에 걷고 그러면서 두 달이 지나갔다. 아이는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다고 했다. 상품을 포장하고 분류하는 물류 배송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때가 가장 평화로웠다. 처음으로 발에서 땀냄새를 맡았다고 했고 피곤에 지쳐 바로 잠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잠시 헤피엔딩을 꿈꿨었다.


아르바이트를 50일 정도 했을까? 두 달이 다 되어가기 바로 전이었다. 아이가 복학을 하고 전공 관련 자격증도 따고 여자친구도 사귀어보겠다고 했다. 헬스클럽을 다니겠다고 했고 우리 부부는 희망에 차서 모든 것에 전폭적인 지지를 했다. 이제 다시 돌아온다. 잠시 떠났던 아이의 원래 영혼이 돌아온다. 불안한 희망이었지만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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