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떠나보내며
1.
바로 아래 여동생은 나랑 세 살 차이다. 동생들과의 추억은 찬란한 사춘기를 보내는 자와 그 뒤를 수습하는 큰딸과 엄마의 추격전 그쯤으로 가득하다. 둘째 동생에게 이 아이는 정말 특별한 존재였다. 제부가 질투를 할 정도로 이 아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아이가 네다섯 살쯤 나는 대학원을 다녔는데 수업을 갈 때마다 둘째가 아이를 돌봐주곤 했다. 마치 연인처럼 둘의 케미가 좋았다. 아이도 이모를 잘 따랐고 이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려 노력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장난감이 있으면 어떻게든 다 구해다 주었고, 자동차에 카시트를 싣고 학교든 데이트든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 애썼다.
이모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항상 이모에게 아이는 일 순위였다. 결혼 후 외국 생활을 한 이모는 아이를 위해 옷가지며 장난감이며 간식이며 모든 것을 공수해 줬고 아이는 그런 이모를 여전히 잘 따르고 좋아했다. 동생은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계속되는 타국 생활이 맞지 않았는지 동생은 결국 아이를 포기했고 농담처럼 나에게 "내가 OO을 너무 사랑해서 하느님이 아이를 안 주시나 봐"라고 말하곤 했다.
첫 번째 고비 때 동생은 함께 고민하며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나보다 더 아파했다. 어떻게든 아이를 돌리려 좋은 음식점에 데려가고 용돈을 주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한 번은 저지선을 지켰고 아이는 다시 돌아오는 시늉을 했다. '다시'라는 희망의 돌을 사막 한가운데 던졌다.
2.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아이에게 제발 아무런 일이 없기를 소망했다. 학교에 복학을 하고 힙합 동아리에 가입하고 정상적이게 출발하는 듯하였다. 4월 말 벚꽃이 얄밉게도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날 학교 축제가 끝났다며 전화를 했다. " 나 이제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이게 말인지 장난인지 전쟁선포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할 것이다.
학교도 못 다니겠고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했다. 힘들다. 못한다. 이 두 문장으로 도배된 대화를 약 2주 동안 했다. 학교가 집에서 머니 불편할까 얻어준 자치집은 거의 쓰레기통이 되어있었고 학교를 다니면서 술이 늘었는지 빈 술병이 방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시 지옥으로 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병원을 바꿨다. 더욱더 경험이 많으신 분 더욱더 실력이 좋으신 분을 찾아 헤매었다. 좋으신 분을 찾았다. 아이의 눈에 신뢰가 보였다. 약을 바꾸고 늘리고 다시 치료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생활은 여전히 황폐했다. 새벽까지 깨어있고 아침에 잠들고 오후에 일어났다. 핸드폰과 혼연 일체가 되어 그 안에 무슨 세상이 있는 것처럼 나오질 못했다. 음식은 달고 기름지고 작극적인 것만 찾았다.
생활에 대해 지적을 하면 미친 듯이 죽겠다고 협박을 하고 의사 선생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며 반박을 했다. 다시 시작이었다. 이 지옥발 전차는 도착지가 없나 보다. 아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나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해 뜰 때 일어나고 해지면 자고 건강한 식사를 하고 땀을 흘리고 운동을 하면 다 나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보통인 보통의 날을 가장 힘겹게 거부하고 있었다.
이젠 비싼 옷과 장식품에 탐닉하지 않았다. 대신 포켓몬 카드게임이라는 것에 미쳐있었다. 카드를 그렇게 사서 옷장에 챙겨 놓았다. 4~5만 원짜리 카드를 몇 박스씩 샀다. 필요한 카드를 제외한 나머지는 버리지도 않고 그냥 싸놓았다. 형태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지독한 광기는 추악하게만 변해갔다.
나는 다시 시들어갔다. 이제는 동생과 덤덤히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지?
나는 남편과 맞지 않아 불편하게 대한 죄 말고는 나쁘지 않게 살아온 거 같은데
혹시 내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이가 저렇게 된 것일까?
늘 남편으로부터 어떻게든 도망가려 했던 내 마음을 악마에게 들켰나?"
가만히 듣고 있던 동생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한다.
"언니 포기하지 마. 포기가 가장 큰 죄야"
3.
동생은 아이를 만나 달라는 나의 부탁을 거절했다.
이미 떠난 사랑에게서 단단해지려고 하는 옛 연인 같았다. 동생도 과거의 아이만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더 이상 아이를 부탁하지 않았다. 다만 간간히 아이의 소식을 전했다. 전한다는 말이 정확하지는 않다. 내가 말하고 싶었다. 세상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이 비극 같은 이야기를 모아두었다가 흘렸다.
아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3개월을 다시 그 동굴 안에서 핸드폰과 포켓몬 카드와 살고 있다. 나는 처음보다는 강해져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열병처럼 확 끓어올랐다 괜찮아지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몰랐다. 잠시 잊고 있다가도 습관처럼 한숨이 나왔고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들은 사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냐며 보내는 말들이 송곳처럼 나를 쑤셔댔다.
다행이다. 자살기도를 안 해서. 다행이다. 사지가 멀쩡해서. 다행이다. 아직 이십 대여서. 다행이다에 해당되는 이유를 찾았다. 엄마와 아빠가 있어서. 치료비가 있어서. 동생이 있어서. 군대를 안 가서. 혼자 의식을 행동을 할 수 있어서. 무엇인가 희망의 여지를 보여줘서. 의술이 발달하고 있어서. 다행인 이유들이 불행한 이유들보다 많았다. 그러면 다행이다. 그러고 결심했다. 이제 온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
시부모님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점장이를 찾아가고 긋을 해야 한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하시더니 결국은 예상 답안지가 돌아왔다. 모든 게 나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다. 엄하게 키워야 하는데 아이의 모든 뜻을 다 받아줘서 그렇다. 너랑 안 맞는다. 모든 걸 그만두고 지금 당신들이 계시는 시골에서 머리 쓰지 말고 몸 쓰면서 살라하셨다. 아니면 본인들이 아이를 데리고 산다고 하셨다.
코웃음만 나왔다. 물론 이런 사실이 감당하기 힘드셨으리라 예상했다. 한 달 동안의 후폭풍을 견디고 전화를 드려 말씀드렸다. 제 새끼고 제가 키웠으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당신들 손주지만 저에게는 아들입니다.
제 배 아파서 낳고 제가 죽을 때까지 책임지겠습니다로 일단 그들의 아픔을 잠재웠다.
4.
그런데 참 이상하게 친정 부모님들은 반응이 조용하셨다.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 어떻게 견뎌왔니.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겠니. 아이와 나를 걱정해 주셨다. 그러고는 말씀이 없으셨다. 2주 정도 지나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 ㅇㅇ 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걔도 지가 그러고 싶어 그러겠니.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닐 거라 확신한다. 걔는 그런 애가 아니다. 내가 키워서 아는데 걔는 그런 애가 아니다. 네가 많이 힘들겠지만
네가 옆에서 끝까지 함께 해줘라. 엄마는 자식 걱정에 입이 돌아가도 말을 못 한다. 네 동생들 집나 갔을 때 엄마 구안와사 왔었잖아. 밖에서는 찬바닥에 자서 그렇다고 내 불찰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어.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존재야. 힘내라.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해 나갈 사람은 너뿐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이를 안아줘라. 무조건 기다리고, 치료의 전념을 다하고, 기대하지 말고, 너무 절망하지 말고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엄마. 나도 살아야지. 나도 살고 싶어 죽을 것 같아 얘 때문에 미치겠어"
"가슴 아프지만 그게 엄마의 몫이야. 그리고 이 아이와 함께 할 사람은 세상천지에 너밖에 없어"
이 계절은 모두가 우리 아들과 이별을 한 계절이었다. 모두가 첫사랑 아이를 보내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낯선 청년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처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아이를 안고 일어설 각오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