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그림자는 죽어갔다.
1.
가족 모두와 본인만 모르는 이별을 한 아이는 모든 것을 중단 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힘든지 사력을 다해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이는 눈빛부터 모든 것이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못난 병이 있을까? 원인도 잘 모르겠고 완치도 없고 환자도 그리고 바라보는 가족도 함께 말라가는 이런 병이 있을까?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 헤매어봐도 나아지는 것 반복적인 업다운이었다.
남편은 원래 말 수 가 없는 편이었지만 그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 묵언수행하는 사람처럼 아이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도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 아이를 만난 순간 남편은 도망갔다. 진통을 하는 순간 남편은 계속 옆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모습을 보이자 남편이 사라졌다. 탯줄을 자르기 위해서 의사 선생님은 남편을 찾았고 남편은 비상구 쪽에 있다가 황급히 달려와 탯줄을 잘랐다.
마음결이 고운 사람. 우리의 억지스러운 인연에 그렇게 화를 내고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해도 한결같이 가정을 지키고 그 자리에 서있던 사람. 새벽이면 일어나 바지런히 집안의 쓰레기들을 정리하던 사람. 늘 추레한 자신보다 화려하고 빛나는 가족을 더 사랑하고 지지해 주던 사람. 길가에 노숙인이나 거지들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사람.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부모님께 말댓구 한 번 하지 못했던 착한 사람.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식사의 내용보다는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던 늘 불평이 없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유일하게 꿈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바라봤던 존재가 아이였다. 두렵고 감사한 그 모든 것. 아이는 남편에게 세상을 다시 보는 예쁜 렌즈가 되었다. 남편은 다짐했다고 한다. 본인의 아버지가 하도 무서워 본인에게 아들이 생기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고 자전거도 가르쳐주고 시장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 먹으며 둘만의 비밀을 많이 만들겠다고 수 차례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본인의 약속을 단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아이가 어렸을 땐 어깨와 팔을 다 내어주었고 지금은 심장과 다리를 내어주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자꾸만 어두워져 간다. 그 고통의 깊이는 가늠이 된다. 저 사람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 성당에 가면 하느님께 협박을 한다. 저 아버지의 사랑을 봐서라도 아이가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죄인이라면 저 아버지를 보고 다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야속한 하느님은 아직 때가 아닌지 답을 주지 않는다.
한 번은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 당신은 쟤가 정상으로 보여요? 저 아이는 그냥 환자예요. 시한부 같은. 나는 저 아이가 나보다 오래 살지 의문이에요. 조울증의 20%는 자살로 생을 마감해요. 그냥 뇌에 암을 가진 시한부 환자예요.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게 축복이니 아이를 그냥 안아줘요."
" 당신이나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인정하지 못했다. 나는 꼭 나아지리라 믿었다.
이런 절망의 시간 속을 3년이 넘게 지나왔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포기하면 그땐 내가 없는 것이겠지. 이 다짐을 한 달이면 수십 번씩 한다. 그렇게 남편은 자꾸자꾸 시들어 간다. 바라보는 내가 마치 죄인처럼 느껴졌다.
2.
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떨린다. 또 어떤 폭탄이 터질까 두렵다.
" 엄마 저 밖에 나왔어요.
오늘은 바람이 느껴지네요. 살만해요. 산책 좀 하다 들어가려고 전화했어요."
전화를 끊고 울었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 흐느껴 울었다.
이 바람이 도대체 뭔데 그 바람이 너한테 느껴지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니.
대체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네가 이렇게 아프니.
아이는 며칠을 집안에 있다 간신히 몸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람을 느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일까. 내 몸에서 내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껍데기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밥 먹고 누워있고 핸드폰만 보고 또 먹고 게임을 하고 그러다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미풍에 놀랐다.
대한민국의 2%가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정상인 사람도 고통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는데 이 환우들은 고통에 고통에 고통을 살다가 안락에 죽는 걸까? 조울증이 위험한 이유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확률이 20%가 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조울증 환우의 가족들은 더욱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아이가 밖으로 나와 바람을 느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게 참 궁금하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극도로 어려운 도전이 되는 아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까? 왜 나한테 전화를 하고 싶었을까?
내 생각이 나서였을까 아님 대화상대가 필요해서였을까? 모든 것이 궁금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이는 친구가 몇 있다. 다들 열심히 공부를 하고 군대를 가고 연애를 하고 그렇게들 살고 있다. 공부가 안 될 때, 휴가 나오면, 여자 친구랑 헤어지면 아이를 찾는다. 아이는 또 그런 친구들을 만나 그 감당도 안 되는 남의 상처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나오는데 며칠이 걸린다.
아이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했다. 바람이 느껴졌데요. 거의 한 달 만의 일이래요. 다행일까요 불행일까요. 나는 어떻게 하죠. 도망가고 싶어요. 포기하고 싶어요. 남편은 다시 그 성인 같은 말들로 그냥 참아내라고 이야기했다. 아이가 옆에 있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 마침 바람을 불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하라며 내 울분 섞인 하소연에 침착히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