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우리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의 본질을 가르친다.
1.
전쟁에서 전사가 전의를 잃었다면 남는 것은 본인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죽음뿐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에서는 모두가 다 잃는다. 그 혼란 속에서도 삶이 존재할까?
다시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서 있는 느낌이다.
짧았던 한 소녀와의 만남이 남긴 건 사랑했다는 감정보다는 상실의 감정이었다. 처음 경험해 보았던 희망, 설렘, 그리고 자주 들여다보았던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만나 애원하고 싶었다. 친구로 남아줄 수 없는지 연락만이라도 주고받을 수는 없는지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내 이기적인 마음일 뿐 나는 다시 안갯속에서 걸어야 했다.
아이는 숨었다. 아이는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더욱 또렷이 알고 그 무기력하고 외로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체중이 불기 시작했다. 밤마다 뭘 그렇게 먹는지 왔다 갔다 부엌에서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 모른 척해주는 것도 고통이었다. 더불어 나의 불면과 수면장애는 심해졌다.
어느 밤, 냉장고 소리가 들리던 새벽 3시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일어나 소리쳤다.
"제발, 잠 좀 자자. 나도 생활이 있어. 내일 일을 해야하잖아"
대구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와 마음에 쇠사슬이 내려앉는 소리가 오버랩되었다.
조금만 참을걸 그날 밤은 밤을 지새우고 새벽 6시가 되어 들어온 아이를 확인하고 출근을 했다.
2.
병원을 다니며 약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인지 행동치료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이야기도 꺼낼 수 없게 나와는 꼭 필요한 말들만 했다. 상담도 심리치료도 본인이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주 어렵게 어렵게 상담이야기를 건네어본다. 단 칼에 싫어요라는 얼음칼 같은 대답만 돌아온다. 이미 너덜너덜 만신창이 난 가슴이 시리다.
약을 늘리면 생리적 부작용이 생긴다.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속이 메슥거린다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 화장실도 자주 간다. 하루에 여섯일곱 번씩 화장실을 가서 외출이 두렵다고 한다. 약을 줄이면 불안감과 호흡곤란 그리고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래서 약을 늘려 먹다 우울감이 가라앉으면 약을 줄인다.
한 달을 4주로 나누었을 때 한 주는 상태가 극심하고 한 주는 살만하고 나머지 한 주는 극심과 살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조금 나아질 때를 기다려 정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한다. 아이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했다. 어떤 것이라도 해보라고 응원과 격려를 한다. 다만 속으로, 너 자신을 좀 챙겨 줄래, 애원을 해본다.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일을 해 보겠다고 한다. 아이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 밖을 나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가서 두려움들과 부딪혀 보고 돌아오는 연습을 많이 했으면 한다.
자식이 스무 살이 되면 모두 떠나보낸다. 나는 스무 살이 되면서 철옹성 같은 피난처를 만들어내야 한다.
3.
언제까지 어디까지 나는 존재해야 하는지 난제를 들고 골치가 아프다. 십자가를 메고 걸었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았다.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는 그 고통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건 진리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정말 포기할 수 없다. 그때의 그 선물 같은 아이를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 그게 죽음이 아니라는 믿음도 있다. 돌아올 수 있는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다진다. 이렇게 운명의 장난에 질 수 없다.
나는 엄마다. 견뎌내자. 그리고 방법을 찾아보자.
마치 주문처럼 이런 생각들을 되풀이한다.
좋은 식단, 밀착형 생활지도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아이가 내 말을 듣지고 않고 이런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다만 이런 일들을 합리적으로 진행해 줄 기관이 있었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정신질환 환우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병원이 적다. 몇 개의 병원이 있긴 하지만 너무 중증인 정신질환 환우들만 입원 치료하고 있지 약물과 상담치료를 위한 시설형 병원은 없다.
단기 입원을 해서 생활치료, 행동치료를 하는 기관이 있었음 하는 소망을 해 보았다.
가족의 품에서 전달되지 못하는 이야기들에 갇혀 더 악화되는 상황들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치료되었음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이런 시설 혹은 형태의 병원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또한 나와 아이가 함께 헤쳐 나가야 할 숙제였다. 아이가 상담치료를 받았으면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약물과 상담 치료가 병행되면 그 안에 혹시 작은 빛이라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버리지 못하겠다.
아이는 소일거리를 찾아 외출을 하고, 다시 살은 퉁퉁하고 못나게 쪄 오르고 나와의 깊은 대화는 피하고 있다.
아이의 아빠는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며 입을 다물고 운명에 순응하고 있다.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조금 늦더라도 이 지독한 운명의 덫에서 빠져나가야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혹시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 아이가 나아진다면 그것 역시 나의 승리라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나의 싸움이다. 상대가 없는 전쟁을 할 것이다. 만약 상대가 있다면 나의 의지가 되겠지만 내가 조금씩 힘을 내보아야겠다. 저 동굴을 부수던가 아이를 꺼내오던가 목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