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너를 기다려
1.
친정엄마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본인은 얼마나 힘이 들겠니?
본인은 얼마나 힘이 들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감정들에 휘둘려 끌려다니는 건지 살아내는 건지 본인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단 한 번도 그 아이의 마음에서 생각해보려 애쓰지 않았다. 내 마음과 내이성대로 아이를 바라보다 늘 마냥 힘들었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들쑥날쑥하는 아이의 감정 행동들이 마치 신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약하디 약한 인간을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뒤집어 보는 잔인한 신의 게임으로 생각했다. 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이 악물고 견뎌내 신이 재미를 잃고 먼저 이 게임판을 나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나도 남편도 살아내야 했다.
경제 활동을 해야 하고 가끔씩 드는 나의 인생도 바라봐 줘야 했다. 하지만 항상 브레이크를 잡는 것은 아이였다. 아이는 거대한 닻 같았다. 안전한 곳에 정박하기를 바랐다. 조용하고 고요한 그런 곳에 닿아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아이가 끌고 가는 이 배가 아름다운 항해를 하기바랬다.
조울증은 경계성 성격장애와는 다르다. 기분이 심하게 오락가락하는 기분장애는 조울증이 아니다. 조울증은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거나 심하게 가라앉는 상태가 주기적으로 발생되는 질병이다. 자칫 이 구분을 여러 가지 정신질환으로 섞어 하기는 하나 그렇게 되면 치료에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조울증의 가장 위험한 부분은 자살충동이다. 우울기조일 때는 방안을 벗어나기도 힘들다가 기분이 고양되면 자살할 힘이 생기고 실제로 환우들의 20프로 정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며 기조의 극적인 흔들림이 없게 관리를 해 주어야 한다. 중독적인 요소가 강한 취미나 활동은 극단적으로 자제해야 하며 항상 주변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
아이는 지금 몇 번의 업다운을 반복하고 있다. 약물치료를 하는데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든 경우들이 찾아온다. 학교를 휴학하고 자취집에서 다시 본가로 들어오고 낮과 밤이 바뀌고 그렇게 아이는 다시 그렇게 힘든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번엔 아이가 음악을 만든다고 가사를 쓰고 그 위에 리듬을 붙인다. 책상 위에 마이크를 놓고 밤새 랩을 읊조린다. 말을 빨리하는 것도 증상이라던데 나는 음악 하는 아이의 소리들이 모두 질병의 증상들로만 들린다.
2.
아이가 좋아졌다. 무엇인가 기쁨에 들떠있고 행복해 보인다. 나도 덩달아 기쁘다. 오랜만에 아이의 단정한 모습을 본다. 외모에 자꾸 신경 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너무 감사했다. 이제 정말 조금씩 나아지는 건가 또 기대를 해본다.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좋다. 나아져라 아이야. 조금씩만 조금씩만 그 거지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거라. 매일 0.1mm의 일탈을 해라. 그 매일이 너의 구원의 문을 만들어 낼 것이다. 주문을 건다. 희망을 가져본다.
희망은 사랑에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과의 저녁식사에 한 소녀가 동참을 하게 되었고 서로 호감을 느끼고 좋은 감정을 주고받고 있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아이의 눈동자에서 처음으로 호의를 보았다. 친절함을 보았고 수용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아이가 내게 말을 건다. 지금 만나는 소녀가 좋다고 한다. 사람이 이렇게 좋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매일 만나고 싶고 뭐든 해주고 싶다고 한다. 함께 밥을 먹자고 한다.
흔쾌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는 그 소녀를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왜 내 가슴이 뛰고 세상이 모두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소녀에게 감사했다. 소녀가 마치 하늘에서 보내준 구원의 여신인 것 같았다. 소녀야 너의 사랑으로 한 생명이 살아날 수 있으니 부디 그 은총을 쉽사리 거둬가지 말아 주겠니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아이와 소녀를 만났다. 너무 예뻐서 바라보기도 아까웠다. 사랑 많이 받고 잘 자란 귀여운 태도가 여기저기 묻어 나왔다. 준비한 선물을 조심스레 건네며 마음속으로는 천 마디의 말도 더 하고 싶었지만 말을 천 번을 더 아껴 마음에 들지 모르겠어요 하며 건넸다. 수줍은 듯 좋아하는 모습 올라가는 입꼬리 발그레한 볼 왜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왔다. 이 소녀와의 만남이 꼭 구원이 아니라도 괜찮다. 단 한 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도 감사하다. 그렇게 바라보았던 그 시간을 기억하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아이의 생활이 달라졌다. 어학원을 다니겠다고 학원을 끊어 달라고 했다. 흔쾌히 어학원을 끊어주었다. 여자친구가 학원을 다니니 그 시간에 같이 공부를 하고 끝나고 집에 바래다주며 데이트를 한다고 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냥 여우한테 홀린 기분이었다.
아이의 변화를 바라보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너무 의존하는 생활이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단 한순간의 기억으로부터 그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고 유명한 철학자가 말했다. 나는 너무 이기적으로 내 아이를 위한 그 단 한순간의 기억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3.
약 2개월 동안 지속된 봄날은 학교를 휴학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에게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여자친구를 생각하고 연락을 기다리며 늦게 까지 잠을 자지 않고 설레는 모습이 여느 대학생과 같았다. 약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으며 질서를 찾으려는 아이의 모습도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이 또한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
아이의 여자친구는 이성교제에 대한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자신의 결점을 말하는 것이 용기가 안 났다보다. 군대는 4급 판정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정신과 약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여자 친구 부모님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상황이 여자친구와 조금 더 먼 길을 함께 가기가 어려울 것이라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그날부터 아이는 여자친구와 다투고 연락이 줄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말 수 가 줄었다. 병이 다시 우울기제로 들어가는 것인지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기폭제가 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둘 다 일 수도 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만남은 2달 만에 끝이 났다. 결론은 묻지 않았다. 아이도 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배달음식들을 시켜 먹고 낮과 밤이 바뀌고 랩을 서너 시간씩 뱉어냈다.
가끔 거친 단어들을 사용해 이야기를 했다. 이 점이 더 악화된 부분이었다. 아주 거친 단어들이 그렇게 거친 줄도 모르고 뱉어내기 시작했다. 아랫집에서 조용히 하라는 컴플레인을 받았다고 하니 다시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 어떤 것 하나도 그냥 경미해지는 법이 없다. 조금씩 무게를 담아 이상하게도 괴팍하게 일그러져갔다.
잠시나마 행복했다. 그 소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