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전화

잠시 악몽을 꾼 거야.

by BoNA

1.

저 조그만 인생이 내 인생을 이렇게 가득 채우고 있는 줄 몰랐다. 아이가 준 축복과 기쁨에 나는 날마다 아이와 성장해 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지원을 하고 합격을 했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형태를 띠고 있는 학교는 여러 가지 꼬리표들을 붙이고 있었다. 전국에서 의치한 학과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 1위. SKY를 제일 많이 보내는 학교. 아이의 입학만으로 자랑스럽고 앞서 말한 대학의 입학허가서를 미리 받아놓은 것만 같았다.


학교는 대치동에 있었고 사교육의 폭풍을 피 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공부를 느슨히 한 터라 학원을 가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학원을 가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학원을 선택하고 그 폭풍의 눈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선행이 되지 않은 상태라 중간 이하의 반으로 배정을 받고 그때부터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서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기대와 욕심은 있었지만 과도하게 압박을 하지 않았다. 일종의 자신감 같은 거였다. 늘 잘 해냈으니 잘하리라는 믿음이었다.


아이가 학원을 하나씩 그만두기 시작했다. 혼자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시간이 늘었다.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교하는 길 명품샵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며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외모에 신경을 썼다. 이렇게 사춘기가 시작되나 생각을 했다. 비쩍 마른 몸이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만들었고 아이방의 문은 닫히기 시작했다. 겁이 났다. 늘 자랑스러웠던 나의 아들이 나와 단절을 원한다. 체험학습 여행을 가는데 방독면을 주문하고 치마를 입고 기괴한 차림으로 떠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보면 아무 말 없이 멀어져 있었다.


2.

사춘기다. 늦게 찾아온 지랄 맞은 사춘기다 이렇게 생각했다. 가끔 아이의 기분이 돌아오면 대화를 시도했다.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와 입시가 끝나 후의 변화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을 했다. 좋은 대학은 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는 자신 있게 대답을 했다. 나는 의심한 적이 없었다. 아이가 나에게 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실망시키거나 어긋났던 적이 없었다. 아이의 가능성을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고2 겨울방학 아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했다. 부족한 부분은 개인과외를 원했고 나는 아이의 선생님들을 찾아 아이에게 연결해 주었다. 고2 겨울방학이 지나면서 사춘기가 소강상태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축복처럼 내게 왔듯이 넌 나에게 늘 축복이야라는 말들을 신념처럼 가지고 살았다.


고3이 되고 첫 모의고사를 본 날이었다. 아이는 가채점을 하고 본인의 실력에 만족하며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기특했다. 염려스러운 부분들을 조심조심 잘 넘어가는 아이가 대견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일 생각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착할 시간이 되어갈 때쯤 전화가 왔다. 이 날 이 순간을 영원히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3.

"엄마 나 숨이 안 쉬어져" 처음 듣는 아이의 목소리에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음을 알아챘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한 동안 문을 잠근채 있었다. 복통과 함께 호흡곤란이 왔다. 아이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방문을 걸어 잠근채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의 저녁도, 아이의 희망도 그 방 속에 갇혀 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등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아이는 어제의 증상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 아이와 나, 아이와 세상 사이에는 쇠로 만든 큰 벽이 생겼다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두렵고 무서웠다. 제발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기를 바랐다.


호흡곤란의 증상이 있은지 2주 뒤 토요일 아이가 스스로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몇 가지 검사를 했고 본인은 우울증이 심해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통보를 했다. 뒤통수도 폭탄도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는 대 사건이었다. 나와 남편은 아이들 다독여 병원을 가고 상담을 받았다. 아이에게 처음 나타난 증상은 공황장애 그러고 나서 아이가 까맣게 타버린 것 같이 어두워진 것은 우울증이라고 했다.


병원의 진단결과를 믿을 수 없었지만 어두워져 가는 아이를 볼 때마다 병원을 찾게 되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하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것이 마치 서서히 죽어가는 독약을 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아이가 저 약 때문에 겪게 될 부작용들이 아이를 망칠까 두려웠다. 그림 같았던 축복이었던 아이가 화학약품에 죽어간다는 생각에 나도 함께 말라가지 시작했다.


4.

아이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내 아이가 아니다.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지각을 모르던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지를 않는다. 학교를 거부한다. 이미 첫 모의고사로 실력을 증명했으니 이제 학교는 됐다고 한다.

아이와 내가 마주하는 매 순간마다 싸웠다. 달래도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아이가 원하는 걸 사줘도 보고

별짓을 다해도 아이는 그날 밤 이후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질 않는다. 밤마다 한강변을 따라 걷는다. 나는 숨죽이고 지켜만 본다. 하루는 새벽 4시가 되어서 들어왔다. 맨발로 슬리퍼를 끌로 그렇게 몇 시간을 걷는다고 이야기한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대학은 포기해야 했다. 고등학교라도 졸업해야 했다. 모든 것이 하루 밤 사이에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거짓말이다. 나는 악몽을 꾸는 것이다 생각을 했다.


아이의 증상들은 점점 심해졌다. 어느 날은 명품을 사달라며 시위 아닌 시위를 벌였다. 400만 원가량의 체육복 상의 같은 것이었다. 본인의 목숨값보다 싸다며 윽박지르며 나의 몫을 죄어왔다. 이때 막았어야 했을까?

이때 모든 것을 끝냈어야 했을까? 남편은 아이의 논리에 수긍하며 할부로 그 옷을 사주었다. 과외비, 학원비 몇 달 내줬다 생각하고 아들이 마음이 건강해진다는데 이 것도 못 사주냐는 협박에 남편은 당해내질 못했고

그 협박이 아이와 아버지의 위치가 바뀔 정도로 위험한 게임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날마다 죽어갔다. 나의 인생도 죽어갔다. 모든 것이 그렇게 순간에 바뀔 줄 알았다면 조용히 겸손히 살았을걸. 기뻐도 기쁜 척 안 하고 주단을 걷듯이 그렇게 허리 꼿꼿이 펴고 걷지 않았을 걸. 혼자 집안에 금송아지 있는 것처럼 조용히 조용히 없는 듯 숨소리 내지도 말고 살았을 걸 하는 후회가 매일 아침과 함께 찾아왔다.

주변에서는 자꾸 야위어가는 나를 걱정했고 나는 밤마다 반바지에 슬리퍼차림으로 걸어 다니는 아이를 걱정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과 우리 가정에 부모의 권위는 바닥났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이의 증상을 빠르게 인정했다. 정신건강이 매우 나빠진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모든 것을 맞춰주기 시작했다. 아이가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어마 무시한 소비욕구를 나 몰래 채워주느라 남편은 늘 불안했다. 마냥 아이가 불쌍하고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까지 가지게 되었다.


거부하지 못하는 태도로 나와는 늘 싸웠고 나는 이 둘에게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이혼을 할까 도망을 갈까 다시 원점으로 나의 꿈같이 좋은 시절은 돌아가 버렸다.

다만 내가 잠시 잠시 현실로 돌아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아들의 동생, 나의 보물, 그리고 우리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 오빠 때문에 싸우고, 소란스럽고, 걱정스럽던 집안에서 딸아이가 성숙해 가기 시작했다.


말 수가 줄고, 용돈을 모아 나에게 커피와 빵을 사다 주고 혼자 그렇게 이 뒤엉킨 혼란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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