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사는 세상

by BoNA

1.

36주 1일. 아이가 내 안에 머무르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 시간들.

적은 몸무게지만 건강했고 다소 머리둘레가 크다해서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기쁨을 주었다.

세상에 아이를 갖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일까?

아이가 내 안에 온 순간부터 우주의 모든 시간이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였던 엄마의 식성을 육식주의자로 바꾸고, 하루하루 깨어있는 일분일초가 행복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버거울 정도 받았고, 축복은 끊이지 않았다.


초음파 사진 사이로 아이의 성별이 확인되는 순간 친정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딸 많은 며느리의 설움이 한순간에 녹아져 내리고, 서울 부잣집에 시집가서 대우받고 살기 바라는 친정엄마의 기도가 다 이루어진 것 같은 감정이 복받쳐 나는 다시 엄마의 0순위가 되었다.

늘 하루하루 전쟁터에 나가시는 것 같던 시부모님의 모습도 밝아지시고 더욱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의미를 가지시기 시작했다.


아이는 너무 완벽했다. 뽀얀 피부에 눈코입 어디 하나 못난 대가 없고 양쪽어른들을 조금씩 닮아 누가 봐도 그 조막만 한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나면서 나는 더욱 당당해졌고 커다란 방패막이되어 제사도 각종 행사에서도 종종 열외가 되었다.

아이는 외모뿐 아니라 지능도 뛰어났다. 보행기를 타며 벽에 붙여놓은 한글판과 알파벳 포스터를 보며 기호를 익히듯 한글과 알파벳을 익혔다. 글을 꽤 빨리 읽기 시작했으며 수에 강했다. 아이의 교육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지방에 사는 나는 시부모님의 권유로 서울로 이사를 했다.


서울에 와서도 아이는 뛰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 미리 교육을 받은 아이들 사이에서 월등했다.

아이는 사교육에 치이지 않았다. 내가 서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방식들을 몰랐고 그냥 집에서 틈틈이 독서와 연산을 시켰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개인 교습으로 메워 나갔다.

하지만 내 열등감인지 다른 세상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 스포츠에 열광했었다. 아이스하키, 야구, 축구, 수영 등 좋은 집안의 아니 뒤돌아 생각해 보니 그들만의 리그에 동행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스하키 팀에는 연예인의 자녀가, 야구는 미국인 캠프 안에서 , 축구는 국대출신의 감독아래서 최고의 환경이라 생각하며 극성맞게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아이스하키팀에서는 골키퍼 주변에서 아이스스케이팅을, 축구팀에서도 골키퍼와 잡담을, 야구팀에서는 대기석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 수였다. 오로지 수영만 조금씩 조금씩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가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나 보다 하고 모든 스포츠 활동을 중단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 운동장을 돌거나 동네 문구점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는 레고를 수집하듯이 사들였고 양가 조부모님들의 주머니는 새로 나오는 레고 시리즈들로 가벼워졌다.


행복했다. 아이의 모든 것들이 자랑스러웠고 나는 세상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가 동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위해 여동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늘 내가 꾸어왔던 꿈. 4인가족. 단란하고 예쁜 4인가족. 고도로 현대화되고 지식인들 같이 보였던 4인 가족을 만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 외삼촌, 작은아버지, 그리고 여동생까지 모든 것이 다 있는 아이가 되었다.


2.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이도 남편의 사업도 그리고 시댁의 태도도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최적화되어 있었다.

아이는 늘 칭찬과 상장을 스크랩했고, 남편이 주는 생활비는 입주 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시댁에서는 여러 가지 명목을 만들어 아이에게 돈을 주셨다.


친정엄마는 나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았고, 엄마의 선택이 정확했음을 너무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두고 사는 딸, 손자 손녀가 그림 같은 가정. 엄마의 갱년기는 내가 주는 용돈과 카드 그리고 손주 손녀의 미소로 마법처럼 사라졌다.


아들은 동생의 추첨으로 강남의 사립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영민함과 좋은 성격으로 잘 적응했다.

우리 부부는 강남생활에 입성하게 되었다. 아이의 중학교를 고민하게 되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염두에 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백화점에서 장을 보고 외식을 하는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카푸치노는 나의 모든 것들을 가득채워졌다.


아이는 중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렇게 사교육에 몰입하지 않았던 이유에 최 상위권을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위권을 유지했기에 이 정도면 서울 안에 있는 명문대학교에는 갈 수 있겠지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는 본인의 성격과 기질에 맞게 학교에 늦는 법도 숙제를 잊는 법도 없었다. 아이는 나를 항상 주목받게 만들어 주었고 나는 아침마다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이와 반대로 딸아이는 초등학교에서도 한글을 떼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고 심성이 좋은 예술 쪽으로 특화된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공부가 늦어도 걱정되지 않았다. 오빠가 받아오는 상장들이 넉넉히 동생의 몫까지 챙기고 남았기에 동생은 합창을 하며 클럽 스포츠 팀에 들어가 주말마다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3.

완벽한 시절이었다.

결혼식장 입구에서부터 이혼을 생각했었던 나에게 한 생명이 다가와 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주고, 나만 아이를 낳고 나만 행복한 세상을 사는 환경을 선물해 주었다.

내가 걷는 길이 늘 꽃 주단 같았다. 사람들이 늘 나를 부러움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듯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관대해지고 더욱더 친절해지고 여유로워졌다.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