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찾아오셔야 저랑 친구가 됩니다.
"저를 찾아오셔야 저랑 친구가 됩니다. 저는 먼저 연락을 잘 못합니다."
선생님의 주거공간 거실에 큰 테이블이 있다. 혼자 계시는데 왜 저렇게 큰 식탁형 테이블이 있을까 의아했다.
"선생님 이렇게 큰 테이블이 필요하신가요?" " 내일 모레 제자들이 와요. 10명이 온다고 해서 의자를 2개 더 구입했어요. 마음에 드는게 없어 이케아에 다녀왔어요. 어때요? 잘어울리나요? " 흐믓한 미소로 입꼬리를 올리시며 대답을 하셨다. 의자는 등과 팔이 없는 스툴형으로 나무 느낌이 나서 깔끔하고 도시적인 내부 공간에 너무 잘 어울렸다. "집에 손님이 많이 오시나봐요?" " 저는 제가 전화를 걸거나 찾아 가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저는 먼저 가지를 않습니다. 저의 선생님들도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이런 성격은 아버지로 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저희 집에 늘 손님들을 초대하셨습니다. 형제들, 친구들을 초대하시고 극진히 대접해주시고 늘 환대를 해 주셨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도와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남에 댓가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보여주신 환경에 제가 익숙해 진 것같습니다. 저는 제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이 저의 친구이자 귀한 손님입니다. 하지만 제가 특별히 먼저 만나자 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의 시간과 생활을 존중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저의 제자들이 혹시나 작업을 하다가 저의 전화를 받고 망설이는 그 시간들이 싫습니다. 저의 선생님들이 저의 요청에 혹여라도 스케줄을 조정하며 고민하는 시간들이 싫습니다. 다만 저를 먼저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의 중심인 저의 공간을 내어주고 환대를 해 드립니다. 저는 저를 나누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친구가 됩니다. 저를 먼저 찾아주셔야 친구가 됩니다."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을 지언정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고집스런 예술가. 스승님들도 찾아와 "돼지 한마리 잡아와라" 하며 부담스런 곁을 주셔도 기쁜 마음으로 한 달 아르바이트비를 쓰는 독특한 예술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은 본인이 중심이 되는 주체적인 인간관계를 일찍이 아버지로 부터 배운 분이셨다. 다시 말하자면, 상대의 사정이나 환경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생길까봐 먼저 배려를 하고 본인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최선을 다해 대접을 해오신 것이다. 불편한이야기, 즐거운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두 본인의 테이블위에서 들어주시고 함께 나누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큰 배려를 담아 친구를 만드시는 분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짖꿎은 질문을 했다. " 싫은 사람이 자꾸 찾아와도 만나 주십니까?" "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저희 집에 찾아오는 친구들 중에 함께 있는 시간 만큼은 싫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음식과 술을 나누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아갈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나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문앞에 나와 마중을 하시고 갈 때 까지 배웅을 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은 만남에 최선을 다하시고 사람이 찾아오는 것에 선생님의 진심을 나눠주고 계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