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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심 Aug 02. 2023

바닷길

속초부터 고성까지 

‘항상 밝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나는 이 물음에 대하여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빛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어둠이 따라오듯이 언제나 밝은 부분만 존재할 수는 없다. 어느 사람에게도 고민과 걱정이 있고 불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친구 옥상정원은 이 질문의 대답을 잠시 머뭇거리게 하는 사람이다. 옥상정원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밝음, 통통 튄다, 해맑음, 웃음 등이 떠오른다. 물론 그에게도 고민과 걱정이 있고 우울할 때가 존재한다. 허나 어둠을 밝음으로 잘 승화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녀는 나의 동네 친구로 상당히 병약한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어디야? 내가 지금 나갈까?”라고 하며 한 걸음에  달려와준다. 심적으로도 병약한 내가 어떠한 일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스무살 이후로부터 달고 살던 고질병인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는 훨씬 심해졌고 밤에 잠을 잘 자기도 힘들었다. 이런 나를 데리고 강원도로 훌렁 떠나 주었다. 사람이 생각이 많을 때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며. 옥상정원이라 할 수 있었던 일 같다. 우리는 강원도 속초에서 고성까지 장장 16km를 걸었다. 누군가는 ‘여행은 쉬러 가는 것이 아니냐’라고 물을 수 있겠 지만 트레킹 여행은 나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실제로도  산악인에 빙의한 우리 둘의 사진에 수많은 디엠이 왔다. 왜 그런 사서 고생을 하냐고. 하지만 날씨도 많이 덥지 않고 선선했고 걷는 내내 바다가 보였기 때문에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에게는 생전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이었고,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런 만큼 의미가 컸고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싶었다. 눈으로 마음으로 손으로 쉴 새 없이 순간들을 담았다. 당시의 나는 공황장애가 심했을 때라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웠었다. 숨이 막혀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는 내가 타고 있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그냥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버스로 장장 2시간 반이나 걸리는 속초는 더더욱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프리미엄으로 예약한 고속버스는 태어나서 타본  버스 중에 가장 좋았고, 숙면을 취하며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또 그러면 내리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라고 말해 주었던 옥상정원의 말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누군가가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뭐 어때”라는 뉘앙스로 말해주는 것이 참 안정이 된다. 든든한 누군가가 내 뒤를 봐주는 기분이다. 옥상정원과 나는 하루에 커피를 한 잔이라도 못 마시면 고통스러워하는 카페인 중독자들이다. 샷 하나에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던 둘이었지만 이제는 커피 향과 맛을 음미하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도착과 동시에 선크림과 모자로 무장을 한 뒤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동명 커피’에 들러 아이스 아메 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는 갈증에 타던 우리의 목을 축이기에 충분히 시원했고 맛도 좋았다. 마치 우리의 성공적인 출발을 알리는 축배 같았다. 우리는 함께 첫 발걸음을 뗐고 순간들을 서로 사진으로 남겨주며 걸었다. 걷는 동안에는 여러 바닷가 마을들을 보게 되었고, 그 중간중간에 요즘 SNS에서 유명한 카페들도 보았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정취가 묻어나는 동네들을 마주할 때 가장 가슴이 벅찼다. 우리의 발도장을 모래사장 위에 한 발 한 발 찍을 때마다  ‘내가 여기에 왔다 갑니다’라고 새기는 하나의 표식 같았으며 그곳의 삶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떠올리며 홍반장을 불러보기도 했다. 코 끝에 풍겨오는 풀냄새와 바다의 짠향은 하루 종일 내내 남아있었고, 내 몸 위로 흐르는 땀방울마저 찝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더위를 많이 타고 저질 체력인 나이기에 트레킹 여 행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어릴 적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던 나는 모래 놀이를 해본 적이 없었다. 모래성을 쌓아본 적도 맨발로 모래를 밟아본 적도 없었다. 성욱(아빠)과 은정(엄마)은 모래는 아주 더럽고 지저분하며, 유리 조각이나 조개껍질 같은 날카로운 것들에 발을 다칠수도 있다고 절대 못하게 했었다. 그런 나는 아주 작지만 나를  옭아맸던 틀들을 하나씩 깼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바닥에 그냥 주저앉아 사진을 찍고, 맨발로 모래사장 을 걷고 바다에 들어가고, 모래 속을 파헤치며 조개껍데기를  모았다. 가는 도중에 특별한 인연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원주 산악회 분들이었다. 사실 나이로 따지면 모두 60대 이상 분들이시지만 그곳에서만큼은 친구처럼 즐거웠다. ‘젊은 애들이 이런데를 온다는 게 기특하다’라는 반응이 위주였고 함께 자식  얘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나는 그 사진을 참 좋아한다.  우리는 일부러 숙소를 아주 조용한 고성 마을로 잡았다. 조용한 시골의 풍경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동네 에 있는 횟집에서 먹은 자연산 회는 우리에게 주는 상 같았다. 평소에도 회에 술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하는 우리인데 천국이었다. 우리는 횟집 주방장 님께 막장을 만드는 비법까지  전수받고 왔다. 물론 알코올의 힘에 의해 잊어버렸지만.  그 후에는 해변에 가서 돗자리를 깔고 맥주를 먹다가 폭죽 놀이를 했는데 이것 또한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성욱과 은정은 폭죽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나씩 도장 깨기를 하는 재미는 엄청났다. 인간이 새로운 경험에서 얻는 행복만큼 느낄 수 있는 큰 짜릿함은 없다. 작은 고성 시골 마을에서 우리는 정말 청춘이었다! 문제는 다음날부터 시작했는데 나의 고질병이 또다시 도진 것이다. 잔뜩 기대를 품고 보러 갔던 일출이 흐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엄청나게 들떴던 첫째 날과 달리 둘째 날 에는 무척이나 우울했다. 행복지수를 미리 대출해서 첫째 날 에 다 써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었다. 여행이 끝나가니 까 기대할 게 사라져서일 수도 있고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괜히 눈물이 날 것 같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식당의 웨이팅 줄에 서있지 못할 정도였다.  여행을 망쳐버린 나에 대한 실망과 함께 이러저러한 복합적인 감정들이 몰려와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옥상정원은 그런  나를 이해해 주고 혼자서도 잘 놀았다. 정말 기분이 다운되어 옥상정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는데 일부러 기분을 이끌어주려 하지 않고 혼자 잘 놀아줘서 정말 고마웠다. 우리는 둘 다 발전하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큰 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계획하는 것을 아주 즐긴다. 이 바닷길 여행은 그의 지극한 일부이며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갈 일들은  무궁히 많다. 세상은 아주 넓기에 포크레인을 타는 기분으로  새로운 땅들을 엄청 파내가고 있다. 옥상정원은 추진력이 정말 엄청난데 그에 비해 신중하고 끈기가 있는 내가 잡아주며  파내고 발견해 내기를 반복한다. 서로를 잘 알게된 바 반은 맞고 반은 다르다. 전체적인 결 은 비슷하지만 디테일함이 다르다. 일단 함께 카페를 가면  나는 엉덩이를 한 번도 떼지 않고, 그녀는 엉덩이를 한 번도 붙이지 않는다. 노래 취향도 나는 외국 힙합을 듣지만 그녀 는 동요와 디즈니 노래를 듣는다. 영화 취향도 나는 느와르 나 지브리를 좋아하지만 그녀는 디즈니 등 따뜻한 것들을 좋아한다. 빈 공간이 분명히 존재하는 우리인데 이곳에서 둘이 열심 히 땅을 파내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줘서 울창한 정원을 만 들어가는 기분이다. 앞으로의 우리도 지금의 우리처럼 살아 갔으면 좋겠다. 가끔은 서로를 비춰주는 해가 되기도, 적셔주는 비가 되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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