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십각관의 살인

관시리즈 첫 번째. 아야츠지 유키토 저.

by 청우





세상에 본격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소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본격추리.. 본격추리..

꼴깍.

그리고 그들은 굶어 죽기 직전에 자신들이 써서 내기 시작했다...



e842530515_1.jpg 약 340페이지로 적당한 페이지다.


십각관의 살인은 사회파 미스터리가 강세이던 시절,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의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듣는 작품이다. 1987년 발매되었으니 곧 이 시리즈는 40주년을 맞이하는 셈이다.

갓 만든 빵이 제일 맛있듯, 반전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추리소설들은 더 자극적인 반전을 준비했고 독자들의 역치도 그만큼 높아졌다. 2025년에 와서 38년 전 소설을 읽는 건 다 식은 빵은커녕 유적지에서 캐내온 것과 같다.

그럼에도 기대하고 이 책을 펼친 건 얼마 전부터 계속 생각해 온 '본격추리'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였다.


본격추리란 뭘까?




괴이하고 어딘가 비뚤어진 작품을 평소에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기이한 -대체 왜 이런 식으로 만들었죠?라는 말을 나오게 해야 합격.- 건물을 배경으로 하는 트릭에는 관심이 많았다. 여태까지 보지 않은 이유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중요한 건 지인의 1년에 가까운 강력한 추천은 날이 갈수록 더해져, 대화할 때 10분마다 1번씩 '관시리즈를 봐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신본격...신본격...

나도 공정한 추리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본격추리'라고 함은 제대로 된 트릭을 준비해야 하고 독자에게 공정해야 하며, 그것을 깔끔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 정도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파 미스터리 또한 당 시대 사회 문제를 꼬집는 점은 좋지만... 역시 내 심장을 설레게 하지 않는다.

독자가 책을 읽으며 직접 참여해서 사건을 해석하고 추리하고, 그 예상을 뛰어넘는 해명을 보여주는 명탐정만이 내 심장을 뛰게 한다.


추리하는 과정에 있어서 주어지는 단서가 불공정하다면 이 얼마나 허망한가? '사실은 풀 수 없었다.' 해결 편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든다면? 풀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시간을 들여 읽은 독자에게는 기만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본격추리소설을 쓰는 작가와 독자는 일종의 신뢰관계로 묶여있는 셈이다.

이 수수께끼는 최선을 다한다면 풀 수 있으리라고.






이 책에는 영미 추리소설에 대한 존경이 가득하다. 캐릭터 이름부터 르루, 카, 앨러리, 포 등등... 추리소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한가득이다.

이 책은 도입부터 옛날 추리소설.. 사회파가 나오면서 '본격'추리소설이라 불린 오랜 세계에 대한 애정과 함께 이곳에 다시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반전물도, 추리소설도 진상이 밝혀졌을 때 지금까지의 정보가 재조립되면서 그 과정에서 독자는 쾌감을 얻는다. 그 중요한 반전단서가 독자가 알 수 있었을 정도로 공정하게 숨겨져 있었다면 본격, 그러지 않는다면 반전물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훌륭한 본격 추리소설로 나를 만족시켰다. 그리고 이 책이 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본격 추리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겠지.

추리 장르에서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책처럼 일방향의 매체에서 추리소설만큼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장르가 있을까?

언어도 시대도 다른 두 사람이 누군가 풀어줄 것이라 생각하며, 상대는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즐기는 건 낭만적인 일이 아닐까. 덕분에 내 마음의 추리심(心)도 불타올라서 한동안 책을 읽을 것 같다.



내 마음속 별 : 7/10







- 이하 스포일러 후기 -






결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섬은 '나는 솔로~살인 편~' 육지는 '우케츠와 쿠리하라 군' 정도로 생각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봤다.

그러니 갑작스레 쿠리하라 군이 스크린 안으로 들어와 나는 솔로 ~살인 편~ 범인이라는 말을 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



범인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범인이 주최하기도 했고, 애들이 벚꽃 이야기-피해자는 1학년으로 신년 모임에 참여했다면 4월이니 벚꽃이 만개할 때다.-를 할 때 표정이 안 좋은 것부터 묘하게 존재감 없는 것까지..

허나 주최자가 범인 패턴은 너무 뻔한 거 아니야? 싶어서 포와 오르치의 합동살인으로 결론 내렸다.

역시나 틀렸다. 큰 기대하지 않았다. 추리 잘 못하니까.

애초에 포와 밴 둘 다 한글자라 헷갈린다. 그리고 등장인물 리스트가 없어서 십각관 숙박 지도를 대신 등장인물 리스트 삼았는데 여긴 '반'이라고 쓰여있잖아. 범인 이름정돈 통일해!


다른 건 납득해도 립스틱 살인이라던가, 우연히 타이밍이 맞아 담배로 살해하는 건 '우연이라고? 진짜냐?' 싶었다.

십각관에 있을때 립스틱을 써서 죽을 거란 보장도 없는 데다가, 애거사는 립스틱을 어떤 기분에 바꿔 쓴다던가 하는 일말의 설명도 없었고, 범인이 애거사의 습성을 잘 파악할만한 인물이라는 묘사도 힌트도 없었기에 정말로 단순한 변덕에 기대한 셈이다. 해주고 싶은 말은 많다....

허나 프롤로그부터 '신이 아니라 인간이니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고 수 읽기를 할 수 없다.'라고 언급했고 '인간의 한 일이니 완벽하지 않다'라고 썼으니까 공정하다! 고 판정하며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래. 애초에 이 소설에 어떻게 죽였나? 는 중요하지 않다. 인물들이 추리를 할 때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기회는 있었다'라고 연거푸 이야기를 했을뿐더러 불가능 살인도 아니다. 작가는 대놓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셈이다. 그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반전은 뭘까? 거기서부터 다시 한번 책을 본다면 그 교묘한 트릭을 파훼할 수 있었겠지.


충분히 단서는 있었다.. 밴이 상태가 안 좋았다며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모리스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함께 활동할만한데 안락의자 탐정을 자처했다고 하는 것도, 충분히 섬과 육지를 혼자서도 이동 가능하다고 했단 점도..!!

묘하게 이동거리나 위치를 상세히 설명하길래 당시에는 상상하기 좋으라고 해뒀다고 생각했지만 그 부분도 힌트였다니, 깔끔하게 완패했다.


아, 십각관 안에 비밀방이 존재하고 거기를 통해서 바닷가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만은 맞췄다. 어떻게 된 추리력인지...


트릭만을 평가한다면 8/10점을 주고 싶다.



책을 덮고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건 나카무라 치오리의 사건이다.

나카무라 치오리가 죽은 사건의 진상을 아는 건 이번 사건의 피해자 여섯 뿐이다. 물론 그들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그게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알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 그저 복수하는 걸로 괜찮았던 걸까?

범인의 시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한 걸 전부 보고서도 그 마음만은 알 수 없다. 그저, 진실을 아는 자들이 모두 화마에 사라졌을때 함께 무언가 불타버린 듯 텅 빈 범인을 볼 뿐.


그리고 범행 전 '자신의 범행이 밝혀질지 말지 신에게 맡긴다'며 바다에 던져 보냈던 범인의 범행성명. 그게 마지막에 범인의 앞에 돌아온 건 '네가 선택한 일이니 마지막까지 네가 선택하라'는 누군가의 의지로 들렸다.

완전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걸 탐정역에게 건네어주는 범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알듯 말듯한 심중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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