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좌표
철길 위의 시간, 한 기관사의 기록
짠내 어린 봄바람이 객차 안으로 밀려왔다. 1986년 봄, 수인선.
열네 살 소년은 창밖을 바라봤다. 좁은 철길 위를 기차가 느릿느릿 달렸다.
그 기차가 멈춘 지 삼십 년, 땅속에 묻혀 있던 전차대가 다시 빛을 보았다.
철길을 걷어내고 역사驛舍를 허물어도, 땅 위에 새겨진 좌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KTX 기장 류기윤. 34년간 운전대를 잡아 온 손으로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그는 사라진 것을 찍지 않는다. 남아 있는 자리를 기록한다.
저 멀리, 경인선 열차가 지나간다. 창밖으로 이른 봄빛이 번진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에이이미지 스튜디오
개항광장 앞 폐선부지에서 시간을 기록하다. 류기윤 KTX 기장
구 송도역. 삼십 년 만에 깨어난 전차대.‘American Bridge Company, 1905.’120년 전 바다를 건너온 좌표다시, 돌아서다
철컥. 굴착기 날이 무언가에 부딪쳤다.
“멈춰요!”
엔진이 꺼졌다.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다. 발굴단이 달려와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다. 녹슨 레일이 드러나고, 묵은 쇳내가 공기 속으로 번졌다.
2023년 10월, 연수구 옥련동 302번지. 땅속에서 전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연락이 왔다. “송도역에서 전차대가 확인됐습니다.”
류기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 알겠습니다.”
며칠 뒤, 구 송도역 북서쪽 현장. 가림막 너머로 원형 구조물이 드러나 있었다. 중심축 주변에 고인 물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강철 트러스 위로 레일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고, 나무 침목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레일이 오후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그가 멀리서 구조물을 바라봤다. 트러스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레일의 홈은 또렷했다. 협궤 762밀리미터, 수인선이 달리던 궤도였다. 녹슨 철판 위에 금속 명판이 붙어 있었다. ‘American Bridge Company of New York, U.S.A. 1905, No. 351.’ 120년 전 미국에서 제작되어 바다를 건너온 전차대였다. 남인천역을 거쳐 송도역으로 옮겨와 기관차의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1995년, 수인선과 함께 멈췄다. 이후 삼십 년 가까이 방향을 잃은 채 잠들어 있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차갑고 메말랐다. 그날도 바람이 불었다.
1995년 12월 31일.
사라진 철길 위를,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걷는다.보름 차이
전라북도 익산, 한 부대의 내무반. 낡은 형광등 아래 TV가 켜져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병사 몇 명이 지친 몸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수인선 종운식 생중계였다.
송도역 플랫폼. 협궤 레일 위를 마지막 열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1937년부터 58년을 달린 기차였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누군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작은 객차가 점점 멀어져갔다. 기적 소리가 울렸다. 낮고 길게.
류기윤은 흙먼지로 얼룩진 훈련복 차림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제대까지 보름. 조금만 더 일찍 전역했다면, 그 자리에서 마지막 기적을 들을 수 있었다.
“보름만….” 탄식이 옅게 새어 나왔다. TV 화면이 꺼졌다. 동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형광등 불빛만 남았다.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기억해야 했다. 그날 이후로 사라지는 것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펜을 들고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적었다. 잉크가 천천히 번졌다.
‘수인선, 1937-1995.’
1999년 9월, 승기천 철교. 기차가 떠난 뒤, 침묵만 남았다.(사진 류기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사라져 가는 풍경이 한 장씩 멈춰 섰다.1986년 봄, 협궤의 기억
왜 그렇게 아팠을까.
1986년 봄, 수원역 플랫폼 끝에 작은 기차가 서 있었다. 객차 세 량, 협궤 762밀리미터. 표준 철도의 절반밖에 안 되는 좁은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였다. 수인선. 1937년, 소래 염전의 소금을 실어 나르며 시작된 철길이었다.
열네 살 류기윤이 객차에 올랐다. 좌석이 비좁아 무릎이 앞 좌석에 닿았다. 아주머니 몇 명이 커다란 광주리를 들고 탔다. 통로에 내려놓는 순간,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젖은 소금 냄새, 해초 냄새, 갯벌의 비릿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누군가 창문을 열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객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기차가 출발했다. ‘덜컹, 덜컹’. 좁은 궤도 위에서 차체가 좌우로 기울었다. 객차가 흔들릴 때마다 광주리들이 부딪쳤다. ‘덜그럭, 덜그럭.’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며 웃었다. 창밖으로 도로가 나란히 달렸다. 기차가 속도를 내며 자동차 한 대를 추월했다. “저것 봐, 우리가 더 빨라.” 또 웃음이 터졌다.
소년은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논과 밭, 그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철길. 소래로 가까워질수록 갯벌이 낮게 펼쳐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소금 냄새가 짙어졌다. 하얀 염전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기차는 느렸다. 서두르지 않았지만 멈추지도 않았다. 이 작은 협궤 열차는 반세기를 그렇게 달려왔다. 바다와 갯벌의 안부를 묻고, 사람을 싣고, 삶을 싣고.
송도역에 내리자 바닷바람이 얼굴을 감쌌다. 짠내가 깊숙이 스며들었다. 수인선. 그 이름이 열네 살 소년의 가슴에 선명하게 박혔다.
1999년 9월, 승기천 철교. 열차는 멈췄지만, 길은 끊기지 않았다.(사진 류기윤)소년, 기관사가 되다
1992년 겨울, 스물. 류기윤은 부기관사가 되었다.
짙은 남색 제복을 입고 정모를 눌러 쓰고 거울 앞에 섰다. 협궤 열차를 타던 열네 살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와 다른 얼굴 하나가 서 있었다.
첫 견습 날, 선배가 말없이 앞장섰다. 선로 끝에 기관차가 서 있었다. 문을 열자 묵은내가 밀려왔다. 디젤과 기름, 녹슨 쇠, 땀에 젖었다 마른 가죽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 엔진이 낮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1950년대에 도입된 디젤기관차였다.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철판이 드러나 있고, 운전대는 손때가 켜켜이 쌓여 반질거렸다. 번쩍이는 새 기관차를 기대했지만, 신참에게 주어진 건 버티고 버티다 폐차를 앞둔 열차였다.
“실망하지 마라. 며칠만 지나면 무궁화 열차다.” 선배가 어깨를 두드렸다.
기관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 유리창 너머로 선로가 끝없이 뻗어 있었다. 승객석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세상이 정면으로 달려왔다. 아침 햇살이 레일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덜컹. 덜컹.’ 바퀴와 레일이 맞물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운전대를 단단히 쥐었다. 속도를 올릴 때마다 엔진음이 한 단계씩 높아졌다.
항구를 횡단하는 기차
34년간 160만㎞. 서울과 수도권을 오가며 기관차를 몰았다. 경인선도 달렸다.
‘소운전’이라 불리는 부정기 화물 구간도 운행했다. 인천역에서 석탄을 실어 내륙 발전소로 향하고 시멘트를 싣고 돌아왔다. 부평역과 주안역에서 화차를 떼고 붙이는 작업도 했다.
일 년쯤, 석탄부두 전용선을 맡았다. 인천역에서 출발하면 용현동 골목이 나왔다. 양옆으로 집들이 바짝 붙어 있었다. 이 층 창문이 손 닿을 듯 가까웠다. 빨래가 걸려 있고 화분이 선로 쪽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기적을 울렸다. ‘빠아─’
주민들이 골목 안쪽으로 몸을 비켰다. 아이들이 뛰어 들어갔다. 기관차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동안 집 벽이 바짝 스쳐 갔다.
큰 건널목에 이르면 긴장이 더해졌다. 트럭들은 좀처럼 비켜서지 않았다. 기적을 계속 울렸다.
‘빠아─, 빠아─’
안내원이 몸으로 막아서야 트럭이 겨우 비켜났다. 매연과 디젤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남부역에서 기관차를 돌렸다. 앞뒤 방향이 바뀌었다. 다시 건널목을 건너 인천항으로 향했다.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컨테이너가 층층이 쌓여 있고 크레인이 하늘을 가렸다. 기관차가 부두에서 부두로, 항구를 가로질렀다. 컨테이너선이 다가왔다. 거대한 선체 아래로 기관차가 지나갔다. 갈매기가 낮게 선회했다.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바닥이 땀에 젖어 들었다.
석탄부두, 선로의 끝이었다. 창밖으로 수평선이 펼쳐지고 배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파도가 부둣가를 두드릴 때마다 흰 물보라가 일었다.
“전혀 다른 세계였어요. 좁은 골목에서 거친 건널목을 지나 드넓은 항구까지. 한 시간도 안 되는 구간인데,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지요.”
그래서 그는 사진기를 들었다. 항구를 가로지르던 선로를, 그 위에서 마주한 인천을 남겼다.
1975년 4월, 관광교통 시각표. 기차가 달리던 시간이 빛바랜 페이지에 빼곡하다.
구 송도역사 협궤열차 객차 안, 류기윤 기관사 가족.사라지는 것을 기억하다
1996년 1월, 제대 후 바로 수인선 폐선 구간을 찾았다. 녹슨 레일이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침목 사이로 수풀이 자라고 있었다. 762밀리미터, 좁은 협궤가 길게 이어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 기차가 달리던 길이었다. 그날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로 위에 멈춰 섰다. 기차는 오지 않았다. 두 발로 레일을 밟고 침목을 딛고, 폐선 된 철길을 온몸으로 확인했다. 시간표에서 기차가 사라진다는 것, 그 의미를 그때 알았다. 그날 이후 결심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남아 있는 것부터 붙잡자.’
쉬는 날이면 철길로 향했다. 수인선만이 아니었다. 산업화 시기, 인천은 전용선의 도시였다. 인천항과 인천역을 기점으로 공장에 원료와 완제품을 실어 나르던 청원선請願線이 촘촘히 뻗어 있었다. 석탄부두선, 동양화학선, 인천제철선…. 부평역에서는 군용철도가 이어지고, 주인선은 남인천에서 주안을 거쳐 동두천까지 닿았다. 그 선들이 하나둘 끊기고, 레일이 뜯겨 나가고, 도로에 묻혔다. 하나 지도 위에서 사라진 선들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기차가 지나던 그 자리를 따라 걸었다. 멈추고, 바라보고, 기록했다.
어느덧 수십 년이 흘렀다. 필름과 디지털을 합쳐 수십만 장이 넘는 사진이 하드디스크에 쌓였다. 사라진 철길, 철거된 역사驛舍, 폐차된 기관차…. 더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할 일을 다 한 거지요. 더 달릴 수 없으면 멈추는 게 맞고요. 그래도 거기 철길이 있었다는 건, 누군가는 기억해야 하니까요.”
그는 아쉬움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좌표를 남긴다. 언젠가 누군가 그 자리에 서서 ‘여기에 철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지나간 시간과 그 위에 머물던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남아 있는 것부터 붙잡자.
다시, 옥련동 발굴 현장. 전차대 위에 오후 햇살이 길게 누워 있었다. 류기윤이 사진기를 들어 올렸다. 뷰파인더 안에 120년 시간이 들어왔다. 손가락이 셔터 위에 멈췄다. 잠시, 숨을 고른다. ‘찰칵.’ 저 멀리, 경인선 열차가 지나간다. 창밖으로 이른 봄빛이 번진다.
구 송도역 협궤 객차 안에서, 그 시절 봄날의 풍경을 다시 들여다본다.모든 길은 인천으로
경인선에서 제2차 도시철도망까지
1899년 9월, 한국 최초의 철도가 인천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이어졌다. 경인선이었다. 인천에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1937년, 수인선 협궤열차가 수원에서 인천까지 달렸다.
소래포구로 소금을 실어 나르던 762mm 폭의 작은 철길. 1995년 멈췄지만 2020년 광역전철로 되살아났다. 1999년 인천 지하철 1호선이 개통했다. 2016년에는 2호선이 이어졌다. 공항철도가 놓였고, 서울 7호선 청라 연장과 송도 출발 GTX-B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6년 2월, 제2차 인천 도시철도망구축계획(2026~2035)이 확정되었다. 7개 대상노선, 총연장 약 124km다. 인천 순환3호선은 송도에서 동인천, 청라, 검단을 잇는다. 송도트램, 부평연안부두선, 영종트램 등 트램 3개 노선도 계획에 들어갔다. 용현서창선, 가좌송도선, 인천2호선 논현 연장도 포함된다.
땅에 새겨진 좌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127년 전 제물포에서 출발한 첫 기차처럼, 인천의 철도는 오늘도 미래를 향해 달린다.
1999년 9월, 소래에서 송도까지. 폐선 된 협궤 위를 두 발로 걸으며 기록했다.(사진 류기윤)
1978 소래철교 Ⓒ김용수인천광역시 콘텐츠기획관실에선 <굿모닝인천>, <Incheon Now>, <仁川之窗 인천지창> 세 종류의 매거진을 발행한다. 발행인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8년 연속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 대상 수상, 창간 15주년의 영문 매거진,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정부 중문 매거진. 훌륭한 콘텐츠와 공감의 글을 나누고 싶지만 아직 ‘그게 뭐야?’라는 시민들이 태반이다. 인천이라는 아이템의 보고(寶庫)에서 아껴둔 보물들을 하나 하나 꺼내 알리고 싶다. 가자! 인천시민과 외국인을 위한 열린 소통의 장으로!
철길 위의 시간, 한 기관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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