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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람쥐 Jan 31. 2024

나는 초보 건축인이다.

누워서 든 생각

@출처 핀터레스트

나는 초보 건축인이다.

설계사무소 인턴 4개월, 엔지니어링 회사 5개월, 현재 건축 기획 콘텐츠 회사 5개월 총 14개월의 작고 소중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문과에서 이공계열 지원하기?

내가 건축을 시작했던 건 고등학생 때, 한참 드라마를 좋아하던 나는 우연히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를 다룬 K-드라마를 보았다. 내가 본 드라마는 자극적이고 휘황찬란한 K-드라마가 아닌, 잔잔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휴먼 드라마가 내 마음속 작은 불씨를 집혔다. 물론, 마음먹었을 땐 한참 입시를 준비하던 때라 갑자기 진로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고 특히, 문과계열인 나는 이공계열로 지원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지원도 못한 채 후회할 순 없었다.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K-휴먼드라마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냥 사랑하는 사이

드라마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해 보자면, 붕괴사고와 함께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며, 트라우마와 상실감, 아픔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내용이다.

그때 당시 드라마를 보는 나의 시선은 한 곳으로 향했다. 붕괴 사고의 원인과 건축물 붕괴에 대한 분노였다. 이건 분명 설계 및 시공 그리고 유지관리의 문제라고 생각하였고, 미래에 안전과 연계된 책임감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나머지 그 순간부터 안전한 집을 짓고자 건축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교차지원을 통해 원하는 과에 입학 후,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은 나의 삶에 아는 선배의 멋진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아파트!

한 번 본 아파트의 고급스럽고 웅장한 느낌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건축 디자인에 빠지며 아파트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게 나의 두 번째 변화였다. 기존에 주거 설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단순하게 재미없고 무한 반복의 굴레 같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하고 큰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우연히 본 선배의 멋진 작품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주거 형태의 아파트를 전공으로 한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4년 내내 열심히 설계만 했다. 밤새며 설계하고, 과제도 안 하고 설계하고 동기들과 다사다난한 설계 라이프를 즐기며 함께 졸업작품만을 기다려왔다.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고 졸리지 않았다. 내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 만이 내게 가장 큰 행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이젠 대학 졸업! 서류광탈 면접광탈

하지만 그 매력이 굴레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 밤낮없이 작업한 나의 작품의 애정은 컸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느꼈겠지만, 학생과 실무자는 많이 다르다. 기업은 실무에 바로 투입되는 인재를 원했고 나는 스스로도 그 기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저 학생 때는 느껴보지 못한 제2막이 열린 기분이라 황당하였을 뿐 실무는 전쟁이었고,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 건축은 애정이 아닌 애증으로 다가왔다. 처음 건축을 좋아하던 콩닥콩닥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고, 매일이 건축을 선택했던 나 자신에게 후회와 원망만이 가득했다. 결국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고 내가 정말로 건축을 좋아하는 것이 맞나? 이 정도 애정으로 이 직업을 평생 해도 될까? 아니 나는 행복하지 않아 라는 의구심은 꽤 간단한 일로 확신이 들었다.


주말근무를 하고 밥도 먹지 않은 채 지쳐서 침대에 누워 멍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렇게 벽 보고 멍 때렸던 적이 있던가? 나 지금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몇 분째 벽만 보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동적이고 활발한 나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굉장한 우울감을 안겨줬고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역동적인 일이 하고 싶어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아!


그리고 그 생각은 나에게 나비효과처럼 큰 변화를 불러일으켜 줬다.


그 후 나는 복합적인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짧지만 다른 분야의 두 번의 회사를 더 겪으면서 현재는 건축을 다룬 콘텐츠, 기획 및 전시, 행사 등을 다루는 곳 기획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수많은 고민에 휩싸여 살아간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앞으로 건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자. 이게 내가 겪은 세 번째 변화이다. 내가 공부한 4년의 시간이 아깝고 지나온 과정에 잠겨 있는 것보단 무엇을 얻고 성장시켰으며, 앞으로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중시해 보자.





누군가는 지금 내 글을 읽고 비판할 수도 혹은 어린아이의 투정이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패해서 넘어지고 다시 털고 일어나 뛰어가기도 하고 멈춰 서있기도 한다. 장시간에 쌓아 온 애정이 무너진 건 조금 마음 아픈 일이지만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 아닌 나의 마음의 부실 공사가 원인이기 때문에 더 이상 미련도 없고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나의 작은 짐이자 나의 첫 번째 계절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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