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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람쥐 Jan 31. 2024

내가 버스에서 보는 것_하나

뚜벅이의 어설픈 일기

@출처 핀터레스트

나는 아직 면허가 없는 

일명 '뚜벅이'라고 불린다.


다들 처음 혼자 버스를 탔을 때를 기억할까. 내가 중학생 때, 엄마가 있는 백화점까지 혼자 가기 위해 버스카드에 오천 원을 충전하고 손에 꼭 쥔 채 아무렇지 않게 버스에 올라탔다. 바깥이 보이는 곳에 앉고 싶어서 후다닥 뛰어가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았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그렇게 보는 버스 속 우리 동네는 내가 걸어 다닐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내 시선에서 아른아른 흩날리는 단풍잎, 나보다 작아 보이는 것 같은 자동차까지 혼자 버스를 처음 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왜 이렇게 잘 보이는지. 몽글몽글한 마음 한편으로 내가 내려야 할 지점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긴장도 됐다. 이 장난스러운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소중하고 풋풋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 버스는 나의 주 교통수단이 되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수천번 버스에 타고 내리면서 처음 몽글몽글한 감정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때까진 계절에 맞는 노래를 들으며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는 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스 나들이는 모르는 동네에서 버스 타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건물, 모르는 길, 모르는 풍경이 아직까지 내 눈을 요리조리 굴려준다. 


물론, 하교 후 버스 정류장에서는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긴장이 다 풀린탓인지 그저 버스가 빨리 오기를 기다릴 뿐, 버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출까? 내가 있는 곳 앞에 멈춰 서 바로 타서 자리에 앉고 싶다.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래도 지금 떠올려 보면 학생 때 타던 버스는 정류장에서 친구들과 사진 찍고 박장대소하며 웃던 좋은 기억과, 설계 마감 후 꾸벅꾸벅 졸며 집으로 가던 노곤한 버스, 핸드폰 사진에 저녁노을 사진만 백장이 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4년 후, 매일 같이 다니던 등굣길을 벗어났다. 어엿한 직장인이 된 나는 직장을 서울로 다니게 되면서 서울 버스를 매일같이 타고 다녔다. 이젠 실전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침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 나도 처음으로 지 옥 철을 겪어 보았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버스 오는 시간이 매일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가서 5분이건 10분이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지정된 시간에 오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정확히 아침 7시 50분 버스를 타지 않는 이상 나는 무조건 지각이다. 그전에 일어나 미리 버스를 탈 일은 없으니 제발 7시 50분 버스가 1분만 늦게 와 주세요. 기사님이 신호에 걸려서 조금만 늦게 오시길 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나가보면 긴 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바로 뒤에 줄을 선다. 휴... 오늘은 내가 다섯 번째니까 앉아서 갈 수 있겠군. 내가 평소에 듣던 음악도 듣지 않은 채, 매일 멍 때리며 자리를 사수한다. 버스에서 잠드는 것이 싫던 나에게 있어서 아침의 눈 부신 버스는 앉자마자 잠드는 침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퇴근 후 버스는 더하다. 출근시간은 제각각 이어도 퇴근시간은 대부분 6시!  집에 빨리 가기 위해선 5시 50분부터 퇴근 준비를 해야 한다. 정확히 6시 10분 지하철을 타고 40분에 버스 정류장 도착까지 나에게 매일 주어지는 미션이다. 반대로 우리 팀장님은 지금 가면 피크 타임이라고 대부분 일을 더 하다가 퇴근하신다. 하지만 전 그 피크타임에 껴서 가겠습니다! 나는 잽싸게 나가 사람들 사이에 끼여 핸드폰만 보며 아등바등 버스를 타고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기가 빨린 상태로 집에 도착해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가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에 총 1시간 일주일에 5시간 한 달이면 30시간이다. 

나는 다가올 30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버스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 핸드폰을 하는 사람들,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 때리는 사람들 누가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 그리고 피치 못하게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면 탓하지 않고 그 시간을 활용할 방법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버스는 좀 힘들긴 해도 아직까지 많은 추억과 애정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바깥 풍경을 다 담아주는 버스 너머의 시선이 좋고, 사계절을 품어주는 버스 안의 온기가 좋다. 조금 붐비고 힘들면 어때 봄이 오듯이 주말 버스는 나에게 아직까지 따듯하고 풋풋한 그때의 감정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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