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아버지

by 사오십년대소녀


서울 북촌에 살 때 우리집 식구 중엔 공부하는 학생이 많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시골에 사는 사촌오빠들도 데려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르치셨다.

우리 아버지 바로 밑의 동생인 넷째 아버지는 최고 대학을 다니며 국문학을 전공하셨다.

그 당시 나는 서너 살이고, 밤낮으로 우는 것이 일이었다고 한다.

넷째 아버지는 검은 망토 교복을 입고 나가다 나를 안고, “올 때 사탕 사다 줄게. 잘 놀아.”라고 말하고 뽀뽀를 하곤 했단다. 나는 팔도 없는 시커먼 망토를 입은 넷째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무서워서 피하지도 못하고 뽀뽀를 당했단다.

사촌 오빠들은 나에게 “밤에 울지 마.” 하고 꿀밤을 주고 갔다고 한다.

저녁이면 사탕 사 올 넷째 아버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캄캄한 밤에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대문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이 무서워서 나는 방으로 도망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도 넷째 아버지 하면, 검은 망토를 입은 무서운 모습과 망토를 휘두르며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만 선하다.

넷째 아버지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문을 현란하게 써서 옥살이를 하셨다. 우리 아버지가 뒤로 뇌물을 주어 넷째 아버지를 옥에서 꺼내 멀리 평양으로 보내셨다고 한다.

그 당시는 남북이 분단되지 않았던 시대라 삼촌, 고모들이 넷째 아버지를 만나러 평양을 다니셨다고 한다.

6.25사변으로 남북이 막히고, 넷째 아버지는 북한에 갇혀버렸다.

넷째 아버지뿐만 아니라, 국민학교 교사였던 사촌 언니는 하필 6월 25일 일요일에 당직하다 북으로 납치되었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기억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어머니 살아 계실 때 들은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쓴 것이 더 많다.

넷째 아버지 이야기인데, 사촌 언니까지 언급한 것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다음에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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