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6.25 사변(상)

by 사오십년대소녀

어린 시절에 겪었고, 세월이 많이 흘러 세세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세월이 흘렀어도 잊히지 않는 일들이 있어서 맥락 없이 써보겠다.


우리 가족이 관악산 아래 시흥에 이사 와서 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삽시간에 북한군이 내려와 피난을 못갔다.


제일 기억에 남은 일이 있다.

어느 날, 고모님과 집에 오는데 잡곡 밭에서 신음이 났다. 고모님이 ‘누구요?’ 하고 소리치자 뚝 그쳤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밭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밭둑에서 기웃거리는데, 이번엔 울음소리가 났다. 고모님이 소리 나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호기심에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보다 큰 총을 메고 피투성이였다. 고모님이 왜 이러냐고,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당시 우리 집은 시흥 언덕배기의 번듯하고 큰 기와집이었다. 그 집은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대청마루에는 언니들이 쓰던 책상을 꺼내 군인들이 사무를 보고 있었다.

고모님은 피 흘리는 소년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중공군은 소년과 말을 나누었다.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중공 당국에서 전쟁에 나가면 돈을 준다고 해서 나온 학생 병사였는데 전투 중에 부상 당해 숨어 있었다고 한다. 중공군은 소년을 차에 태워 어딘가로 갔다.

그 뒤로 다시 보진 못했다. 나보다 몇 살 많아 보이지도 않는 아이였기 때문인지 살면서 가끔 기억나고 궁금하다. 전쟁터에서 끝내 죽었을까? 아니면 살아서 지금 90살 백발노인이 되었을까? 그때는 무서웠지만 지금에 와선 손자뻘도 안 되는 어린아이다. 총을 들고 침략한 적군이긴 하지만 너무 어린 소년이 집에 돌아갔기를 바란다.


북한군과 중공군은 우리 집을 뒤져서 어머니와 고모님의 치마와 수건을 어깨와 머리에 두르고 일반인들과 섞여 다녔다. 폭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들은 쌀을 가마니로 들고 와서 어머니에게 밥을 시켰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밥을 해 주고 된장과 김치를 주었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키우던 닭, 토끼, 개를 다 잡아먹었다.

어느 저녁에 군인들이, B29가 와서 관악산에 있는 장OO 별장을 칠 테니 피난 가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피난을 떠났다. 안양에 사는 할아버지 친구 집으로 밤중에 걸어서 갔다. 도중에 총 맞아 쓰러져 있는 피난민들을 수없이 보았는데 끔찍했다.

피난 간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조그만 나무 상자를 여니 미싱 바늘 같은 게 들어 있어서, 꺼내서 던지니 ‘퍽!’하고 터지며 연기가 났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그들에게 물어보니 독침이라고 했다. 무섭고 신기했던 단편적인 기억이다.

전쟁은 이런 강한 인상의 사건 몇 가지로 남아있다. 그 후 우리 집안은 아주 시골로 피난 갔고, 가세도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몹시 기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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