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을 기억에 넣기도 전에 우리 국군과 연합군이 전진하였다.
우리 집은 이번엔 국군과 연합군의 사무실이 되었다.
연합군은 우리 가축이나 식량을 빼앗지 않고, 단지 큰 가마솥에 물만 끓여달라고 했다. 그 솥에 각종 통조림을 통째로 넣어 데워서 따 먹었다.
어렸던 우리는 국군은 반가웠지만, 연합군은 무서웠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우리에게 그들은 통조림과 쬬코렛, 껌 등을 주었다.
하늘에는 아직도 B29가 날아와 관악산 장OO 별장을 치고 면사무소, 기차역, 공장, 학교, 우리 한약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미처 물러가지 못한 북한군이 큰 건물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폭격할 때는 집 앞 논밭에 나가 앉아 있으라고 했다. 머리 위에서 탄피가 슝슝 소리와 함께 비 오듯 쏟아지고, 항아리 같은 폭탄도 떨어졌다.
한편으론 연합군의 횡포도 있어 안심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언니들과 대학 다니는 큰댁 오빠들을 데리고 걸어서 충청도 외갓집으로 피난길을 나섰다. 중간중간 있는 친척, 친지들 집에서 자며 우리 식구가 다 피난했다.
그 후 우리 집안 가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시골 피난지에서 다시 한약국을 운영하셨지만 가난하였고, 서울집이나 시흥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르신들은 그곳에서 작고하셨다.
내가 겪은 전쟁은 쉼 없이 걷던 피난길, 피 흘리는 시체들, 하늘에서 떨어지던 폭탄들과 귀가 찢어지는 폭발음, 그리고 벌벌 떨며 울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일상 보던 이와 영원히 갈라졌고, 애써 마련한 터전을 잃었다.
누가 뭐래도 내 생각은 굳다. 어떤 이유가 있어도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자녀 교육을 위해 50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서울살이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가 당시 조부모님 나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입학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회상하여 글을 쓰니 감회 깊다. 그리고 머리에만 있으며 바글거리던 일들을 글로 정리하니 머리도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