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스페인에서 남편과 '생활동반자법(Pareja de Hecho)'이라는 제도 아래 함께 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커플 관계임을 인정받는 제도다. 이성 간은 물론 동성 간에도 적용되며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꽤 흔한 제도다.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 이름만 다르지 다들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 제도를 한국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설명하면 분위기가 약간 어색해진다. "왜 결혼은 안 해?" 혹은 "그렇게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걸로 사는 거야?"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예상은 했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단지 제도만 다를 뿐인데 우리의 관계는 어디선가 불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럼 나는 되묻고 싶어진다. 정말 쉽게 헤어지려고 이 제도를 선택한 거라면, 결혼을 한다 한들 그 관계는 온전할 수 있을까? 결혼이든 생활 동반자든, 중요한 건 서로를 책임지고 싶다는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게 몇 번의 설명 끝에 나는 그냥 결혼을 했다고 말하게 되었다.
스페인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다. 일단 다들 돈이 없다. 집값, 불안정한 고용, 높은 생활비... 다들 빠듯한데 산다. 그런 상황에서 결혼은 꽤 큰 부담이다.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의 형태 자체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거다. 누군가는 아이 없이 사는 게 좋고, 어떤 커플은 따로 집을 유지하면서 연애를 지속한다. 또 누군가는 비혼 주의지만 반려자와는 오래 함께 살고 싶어 한다. 함께 살아가고 서로 책임지는 방식은 꼭 결혼으로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그 관계를 사회가 어떻게 인정하고 보호하느냐가 아닐까. 단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그 관계의 진정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각자의 방식대로 제도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한국에도 이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동거 커플, 결혼을 원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이들, 혹은 친구나 비혈연 가족과 장기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이들은 병원에서 수술 동의서를 쓸 수 없고, 사고나 위급 상황에서 보호자 역할을 인정받지 못한다. 관계의 실질이 아닌, 서류상의 형태로만 권리를 판단하는 사회 속에서 너무 많은 관계가 배제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삶의 형태가 하나일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이 방식이 편하고, 또 누군가는 다른 방식이 맞을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다양한 선택들이 사회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느냐는 거다.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는 이미 다양하다. 비혼, 동거, 생활동반자, 결혼 등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제는 그 다양함을 제도로 보호할 차례다. 법은 사랑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존중해 주는 장치로써 존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