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무의식

by 이음

오늘 장을 보러 가는 길, 마트 계단에서 카트를 들고 내려오려는 할머니를 마주쳤다. 별생각 없이 다가가 카트를 내려 드렸다. 할머니는 고맙다 하셨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의식적으로 뭔가를 결정했다기보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다.


그때 깨달았다. 이건 남편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편은 이런 식이었다. 유모차를 끄느라 손이 부족한 사람의 문을 달려가 열어준다던가,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가 도움이 필요한 지 묻는 모습. 그때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아마 남편의 그런 모습에 반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처음엔 이곳 사람들의 다정함이 어색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안부를 묻고, 마트 키오스크 계산대에선 어르신들이 서툴러도 직원들은 천천히 하라며, 잘하고 계신다고 격려한다. 남편은 이런 분위기에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진짜 다정함은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기대하지 않는 것. 한국에 있을 때는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마음 한켠에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작은 만족감이 남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 기분이 다음 친절의 동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할머니의 카트를 들어 올리면서, 나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손이 먼저 나갔을 뿐. 내 머릿속에는 오히려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진짜 다정함은 그런 계산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그것이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그저 몸이 기억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될 때가 아닐까. 다정함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워질 때, 그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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