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난 자리에

by 이음

주말이면 도시를 떠나 국립공원 안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로 간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좁은 시골길로 접어들면, 창밖의 풍경이 확 달라진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 동안 바람이 세지고, 마을에 다다를 즈음엔 늘 초록빛이 한가득이다.

이 마을을 처음 찾았을 때는 텐트도 없이 차 안에서 잤다. 불편했지만, 그 첫 경험은 꽤 인상 깊었다. 이후로 백패킹을 자주 다니게 되었고, 자연스레 짐을 줄이게 됐다. 거창하게만 들렸던 미니멀리즘이, 몸으로 겪으니 단순해졌다. 그때부터였다. 무엇을 가질 것인가 보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 건.


자연 안에서는 모든 게 단순해진다. 산을 오르고, 걷고, 숨 쉬는 것. 일과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살아가는 감각.

도시에서의 일상이 빠르게 흐르는 강물 같다면, 이곳은 잔잔한 호수 같다. 고요하고, 오래 머무른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복잡했던 생각이 잠잠해진다. 해결책이 없던 고민들도 어느새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산을 오르며 마주치는 풍경 속엔 동물들이 있다. 새끼를 데리고 아찔한 절벽을 걷는 염소, 그늘 아래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소, 멀리서 들리는 당나귀의 낯선 울음소리. 그 속에서 나는 그저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만으로 충분한 삶이다. 여기서는 더 빠르거나, 더 유능하거나, 더 풍요로울 필요가 없다. 숨 쉬고, 잘 먹고, 잘 자면 된다.


마을 어르신들의 일상을 지켜보면, 그들의 삶이 자연스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는 것 같다. 그들은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일들 속에서 그들의 삶은 깊고 단단하게 쌓여 있다.

나는 등산복에 등산화, 스틱까지 챙겨 산을 오르지만, 그들은 풀어진 셔츠와 청바지, 마모된 운동화 차림으로 개와 함께 산길을 유유히 걷는다. 느려 보이지만 어느새 한참을 앞서간다.


오래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며 흙을 딛고 살아온 이들에게선 일종의 결연함이 느껴진다. 절에서 수련하는 스님처럼, 단순하지만 고된 노동을 묵묵히 견딘 이들만의 강인함이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깊게 팬 주름, 단단한 손, 그리고 그 안에서 여전히 맑게 빛나는 눈. 나이를 먹었지만 시선은 흐리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흐트러지지 않은, 오랜 집중이 깃든 시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이상과 현실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