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과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이 말을 낳고 감정이 감정을 데려온다. 서로가 던지는 말에 온몸이 반응하고 때론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걸 전한다. 대화는 마치 한 권의 책을 함께 쓰는 일 같다. 가볍게 시작해도 결국 깊어지고 남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과는 다르다. 내가 건넨 말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진심으로 꺼낸 말을 불필요한 감정 소모라며 쳐내기도 한다. "왜 그렇게 세세한 감정에 집착하냐" "그건 너와 관련 없는 문제잖아" "그냥 넘기면 되는 거 아냐?"
맞는 말이다. 사실 그의 말은 논리적이고 실용적이다. 감정에 너무 오래 머물면 무기력해지고 나만 상처받을 수도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라는 조언 때로는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나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에 오래 머문다. 다른 나라의 뉴스, 잘 알지도 못하는 공동체의 아픔, 이미 지나간 사회 이슈, 혹은 아주 낯선 누군가의 사연에 마음이 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왜 그렇게까지 신경 써?"라는 반응을 듣는다. 그건 과도한 감정이입이고, 현실 도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관한 것들 사이에서 내 감정의 모서리를 발견해서 생각하기를 멈출 수가 없다.
그렇다고 모든 대화가 나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나의 반응이 불필요하다고 쉽게 치부되는 건 아쉽다. 누군가는 나의 민감함을 과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감정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고 느낀다.
대화란 결국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같은 말도 어떤 이에게는 위로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불편함이 된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이와는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 되고 어떤 이와는 소모적 논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점점 더 나의 감정에 기꺼이 함께 머물러주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모든 이야기가 다 생산적일 필요는 없다. 때론 목적 없는 대화, 감정에 머무는 말들이
더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와 마음 깊이 연결되는 순간은 논리보다도, 정답보다도 그 사람이 나의 미세한 진동을 읽어줄 때 생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감정에 집착하고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누군가는 그게 비효율적이라 말하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