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넘은 시간, 골목길 카페테라스에는 부모님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이라면 한창 숙제를 하거나 이미 꿈나라에 있을 시간.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며칠 더 그 풍경을 마음에 담아보니,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혹은 가져본 적 없는 무언가가 그들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이라는 틀에만 갇히지 않는다는 것. 가족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지지와 신뢰. 할머니가 손주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아이는 제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이곳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나는 늘 조용한 아이였다. 어른들 말씀에 순종하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꾹 참아내고 예의 바른 태도로 착한 아이임을 증명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배운 좋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자신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 여기지만 그건 꽤 크고 흔한 착각이다. 나 역시 일곱 살 무렵의 모든 순간이 사진처럼 선명하진 않지만 그때도 내 머릿속엔 복잡하고 조용한 생각들이 맴돌았다. 내가 느꼈던 슬픔, 억울했던 상황, 알 수 없는 불편함을 주던 어른들의 말투와 분위기. 그런 감정들을 흐릿하게나마 분명히 감지했고 표현은 서툴렀을지언정 나름의 판단과 해석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어른은 아이가 마냥 웃고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를 거야라고 쉽게 단정 짓곤 한다. 아이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때로는 무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날, 어른들이 무심코 던졌던 말과 행동들이 오히려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 내 마음 한구석을 할퀴었다는 것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스페인 아이들의 해맑은 눈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내 안의 목소리를 잃어버렸을까.
물론 스페인의 방식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곳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신감과 풍부한 표현력, 어른들과의 자연스러운 교감은 솔직히 부러웠다. 그들은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단단하게 자라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여주고 그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거다. 결과보다 과정을, 완벽함보다 솔직함을 칭찬하고, 아이가 아이다워도, 때론 실수해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것.
어느덧 나도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언젠가 내게도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만큼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도록 돕고 싶다. 스페인에서 만난 아이들처럼,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 속에서 마음껏 꿈꿀 수 있도록.
그래서 다짐했다. 먼 훗날 내가 어른이 되어 내 아이를 마주하게 된다면, 아이 앞에서 늘 조심해야겠다고. 아이는 그저 작고 여린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과 해석을 지닌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임을 잊지 않겠다고. 어른들이 모를 뿐,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또렷이 기억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