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자라는 감각

by 이음

스페인에 살다 보면 가끔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을 마주친다. 지하철 안에서 모두가 시끄럽게 떠드는 풍경을 볼 때, 수업 시간에 늦었는데도 여유롭게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학생을 볼 때, 자신의 생일이라며 연차를 당연하게 쓰는 남편의 동료를 보는 순간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오래 붙잡고 있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규칙과 감각은 이곳에서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때때로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훌쩍 자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각에 너무 민감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눈치 보다 자기 기분을 먼저 말하는 태도, 점심시간이면 모든 걸 멈추고 휴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관습. 문화 상대주의라는 말을 딱히 배우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아버린다. 세상은 정답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내가 오랫동안 이래야 한다고 배운 것들이 사실은 꼭 그래야만 했던 건 아니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 기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예의 없는 사람을 싫어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태도를 불쾌하게 여긴다.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짓는 말이나 혐오의 뉘앙스를 띤 농담에는 웃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내 감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그 감정이 단지 내가 속한 문화가 정해준 옳고 그름 때문인지, 아니면 더 보편적인 존중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차이를 구분하려 애쓴다.


그 감각이 자라야 내가 가진 기준은 고집이 아니라 신념이 되고 다른 문화를 바라볼 때에도 우월감이 아니라 대화의 자세로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가진 기준이 너무 단단하면, 그 단단함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제는 내 기준을 지키되 그것이 전부는 아님을 인정하려 노력 중이다. 그게 이방인으로 오래 살아남는 방식이자 사람 사이에 오래 머무는 방법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어느 날, 나도 몰래 뿌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