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9월 한 아이가 찾아왔다.
아내는 생리주기가 일정하다.
덕분에 4주 차에 낌새를 챘다.
이른 시기에 테스트기 2줄을 거머쥐었다.
병원으로 달려갔고, 임신 확답을 받았다.
작고 흐릿하지만 분명 아기집이 존재했다.
몇 주 뒤면 초음파로 아이 형상을 볼 수 있단다.
내가 아빠가 된다니, 그다지 실감 나진 않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다음 주, 추석이 다가왔다.
나와 아내의 고향은 경상남도 김해다.
현재 사는 경기도에서 꽤 시간이 걸린다.
고민하다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배 부르면 못 간다"는게 우리의 논리였다.
어린 논리였다.
자차인 i30를 끌고 먼 여행을 떠난다.
승차감이 그다지 좋지 않은 차다.
국도 3~50km, 고속도로 80km, 휴게소 3회.
모든 게 모여 이동시간 7시간을 만든다.
시간이 뭐 중요하리, 다행히 무사히 도착한다.
부모님께 초음파 사진을 보여 드린다.
어떤 이는 기쁨의 눈물을,
어떤 이는 환희의 탄성을 보냈다.
그들은 모두 이성을 잃는다.
모아둔 쌈짓돈을 풀어헤친다.
김해의 소들을 죄다 멸종시킬 기세다.
덕분에 아내와 내 배는 함께 불러온다.
몸무게 앞자리가 바뀔 때쯤 우리는 집으로 향한다.
6주 차다.
들뜬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한다.
들뜬 마음은 쉽게 가라앉는다.
의사가 아이가 보이지 않는단다.
혹시 모르니 1주 더 있다 오란다.
"소고기의 기름이 초음파를 가렸겠지 뭐"
잡생각에 잡생각을 더하며 1주일을 기다린다.
7주 차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한다.
무럭무럭 크고 있다고 한다.
아기집만.
아기는 없단다.
주인 없는 집만 확장공사 중이다.
전문용어로 '고사난자'란다.
문제 있는 정자와 난자,
잘못된 결합 과정 등이 원인이다.
무튼 아내의 뱃속에 문제가 있단다.
소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공사 속도가 빠르다.
가만 두면 50평을 훌쩍 넘게 생겼다.
얼른 집을 덜어내야 한다.
'소파술'을 결정한다.
수술은 잘 끝이 났다.
아내는 강하다.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다.
힘든 수술이었지만 잘 견뎌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주룩 운다.
몸의 아픔 때문은 아닐 테다.
아이의 상실, 그곳이 원인일 테다.
덜 강한 나는 이상하게도 울지 않는다.
주인 없는 집, 그뿐이었다고 한없이 자위한다.
우리는 어렸다.
어렸기에 의심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충격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