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흉흉한 건 이해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울 일인가?
이담이는 강성울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서러워도 이리 서러울 순 없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초보 엄마 아빠는 해결책을 탐구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내는 담이를 안아준다.
확실히 만병통치제는 안는 것이다.
안아주면 조용하다.
안아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도 있다던데,
담이는 그렇진 않았다.
나는 약간 못마땅하다.
〈똑게육아〉라는 책을 읽었다.
똑똑하고 게으르게 육아하란다.
마냥 안아주는건 게으른 육아가 아니라 생각했다.
다른 방안을 찾고 싶었다.
마치 동은이 연진의 복수를 준비하듯,
벽면에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한다.
울음의 원인에 대한 마인드맵이 그려진다.
원인은 다양했다.
수면욕, 식욕, 배변 후, 온습도, 지루함, 고 자극, 등 결림, 원더윅스 등
마인드맵은 점차 풍성해졌다.
풍성해지는 마인드맵과 함께, 나의 자신감도 올라갔다.
담이를 안지 않고 진정시키는 법을 설파한다.
초반, 아내와 담이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순간이었다.
마인드맵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담이의 울음이 터져나온다.
원인을 찾지 못하니, 해결책을 강구할 수가 없다.
결국 마지막 남은 해결책을 꺼내든다.
안아 준다.
안고 있으나 무언가 찝찝하다.
계획이 틀어졌단 사실과,
담이를 이해하지 못했단 사실이 나를 옥죈다.
'이유 없는 울음'은 나를 힘들게 했다.
담이의 무게로 인한 팔의 피로는 문제되지 않았다.
몇시간이고 안아줄 수 있다.
문제는 나의 분석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
정확한 분석 툴을 찾고자하는 갈망이 잔존했다.
그렇게 몇개월 담이와 나는 공존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이유 없는 울음'을 이해했다.
아기의 '울음'은 성인의 '말'과 같다.
우리는 대부분 어떤 목적을 가진 채로 말한다.
그러나 매사 목적을 가지진 않는다.
목적없이 그저 떠들기도 한다.
그냥 말이 하고플 때가 있다.
잡담하는 거다.
담이도 똑같다.
목적성을 지니고 울때도 있지만,
목적성 없이 그저 울때도 있다.
모든 울음의 원인을 찾으려 든 그 지점,
그 지점이 잘못된 부분이었다.
'이유 없는 울음'을 이해하고 난 뒤,
담이의 울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 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