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그랬기에 주변에서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많았다.
"언제, 어느 사람과 결혼하는 게 좋냐?"
나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원칙 2가지를 말해준다.
첫째, 1+1는 2 이상이 돼야 한다.
만났을 때 시너지가 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1+1가 1.5가 되면 서로 피곤해진다.
인간의 남 탓 특성 때문이다.
마이너스 요인이 보이면 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물론 대화로 잘 풀어나가는 부부도 있다.
하지만 그건 플랜 B라고 본다.
애초에 여지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둘째, 결혼은 6명에서 하는 것이다.
결혼은 2명에서 하는 게 아니다.
2명은 연애에서 마무리된다.
결혼은 양가 부모님까지 포함한 6명에서 하는 것이다.
둘 간의 사랑을 여섯 명에게 강요할 순 없다.
이들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6명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안 만나면 되지 않나고?
한국인은 인의예지를 중시하는 국가다.
문화를 온전히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다.
결혼 당사자도, 부모도.
우리 6명은 조화로운 편이다.
같은 직군이 6명 중 4명이다.
만나면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대화뿐만이 아니다.
양가 부모님들은 종종 자기들끼리 만나신다.
저 멀리 사는 우리를 제외하고.
이 얼마나 이례적이고 평화로운가?
그 정도로 우리 6명은 돈독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글짓기 전쟁'이 발발한다.
햇살이의 이름이 화두였다.
처음으로 모두의 생각이 달랐다.
본가는 철학관에서 이름을 짓길 원했다.
처가도 철학관이다. 그러나 본가와 다른 철학관이다.
아내는 자신의 성을 햇살이의 이름에 넣고 싶어 했다.
나는 순우리말의 독특한 이름을 원했다.
정리해 보면 우리는 제약 없이 우리 맘대로 이름을 짓고자 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태어난 일시를 기반으로 이름을 짓고자 했다.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이름이기에,
생각보다 양보는 더뎠다.
모르겠다.
우선 하늘에 맡긴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글짓기를 시작한다.
우선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을 따른다.
사실 선택지가 많이 없다.
나의 성인 '김'과 아내의 성인 '이'를 넣고 나면, 단 한 글자가 남는다.
김이서, 김채이, 김이든, 김이수, 김소이, 김이담, 김태이, 김이나 등
다양한 배합의 이름을 만든다.
우리와 별개로 양가 부모님들은 철학관으로 간다.
모르겠다.
하나라도 잘 겹치기만을 바랄 뿐이다.
처가에서 간 철학관, 꽝이다.
본가는? 다행이다. 하나가 얻어걸린다.
자 설득할 일만 남았다.
우선 자신의 성이 들어가 소원을 성취한 아내는 처가에 전화한다.
철학관이 다 거기서 거기라며 처가를 설득한다.
부모님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시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타협하신다.
이름을 들고 가니, 철학관에서 나쁘지 않다고 했단다.
다행이다.
자 이젠 부모님도 정리됐고 나만 남았다.
독특하긴 하나 순우리말은 물 건너갔다.
타협하자.
그래도 아름다운 의미는 포기할 수 없다.
훗날 햇살이가 "내 이름은 왜 이렇게 지었어?"라고 질문할 테다.
그때 "응 철학관에서 지었어" 보다 더 근사한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리고 결론에 도달한다.
"아빠(김) 엄마(이)와 함께 같이 편안하게(담) 잘 살잔 의미로 지었지"
"우리 가족은 하나란다"
그렇게 햇살이는 김이담으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