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라스트 홀리데이

by 헵타포드

아내가 조리원에 있는 기간.

흔히 '라스트 홀리데이'라 말한다.

철저히 계획을 수립했다.

햇살이가 오면 하기 힘든 활동에 중점을 뒀다.


우선 테니스다.

테니스는 야외에서 진행된다.

햇살이가 오면 집에서 벗어나기 힘들 테다.

가불로 미리 열심히 치기로 한다.

1일 1 테니스? 아니 2 테니스까지 생각한다.

딱 손목이 나가지 않을 만큼만 계획한다.


그닥 사교적이지 않다.

그러나 햇살이가 집에 오면

앞으로 언제 또 친구들을 보겠는가?

카톡방을 우수수 판다.

1년 동안 못 보니 지금 보자고 언지를 둔다.

술약속이 우수수 잡힌다.

딱 술병이 나지 않을 만큼만 잡는다.


아기들은 영상 자극에 취약하다.

또한 한 순간도 한눈을 팔아선 안된다.

과연 드라마 한 편을 온전히 볼 시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계획에 넣는다.

드라마를 그닥 좋아하진 않으나 상관없다.

이태원 클래스, 나의 아저씨 등

평소 보고 싶었던 작품을 담는다.

딱 다음날 출근이 가능할 정도로만 담는다.


마지막으로 독서다.

미친 듯이 책을 산다.

육아 책이 10권을 돌파한다.

구매 명분은 다양하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햇살이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 등등.

딱 용돈을 10만 원 초과할 정도로만 산다.


누구보다 완벽한 계획이 수립된다.

이제 실천만이 남았다.

그러나 실천의 시작점에서, 계획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햇살이의 사경치료다.

아내와 함께 주 2~3회 물리치료를 다닌다.

직장생활과 사경치료의 병행은 개인시간을 앗아갔다.


INTJ인 나는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계획이 흐트러질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번 사례도 그랬다.

햇살이의 사경도 슬펐지만,

나의 계획 무산도 슬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연 '육아 속에서 나의 계획은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까?'

아기는 홀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존재다.

하는 거라곤 먹고 자고 싸는 것 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홀로 할 수 없다.

패턴도 불균일하다.

매 순간 돌봄이 필요한 존재다.


온전히 나를 바꿀 순 없을 것이다.

다만 변화의 흐름에 잘 안착하기 위해서,

계획에 대한 집착을 덜어내기로 했다.

햇살이는 아직 집에 오지 않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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