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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02. 2023

빙의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23.

프로젝트가 생겼다 하면 귀신이 씌는 분들이 있다. 


이름하여 강림 드라마.  이분들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첫 단계는 광고주 의사 결정권자와 접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칭 빙의 확률 100%. 이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은 오직 그분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늘어놓는 걱정이라고는 그분들이 좋아할까 아닐까의 여부다. 자신의 계획이 뭔지, 자신이 그 제품에 대해서 꾸고 있는 꿈이 뭔지는 당연히 뒷전이다. 문제는 그 영빨이 용하지가 않다는 거다. 귀신이 씌려면 제대로 씌든가, 세 번에 한 번 확률이라도 점괘가 맞았으면 이런 얘기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머리로 풀은 문제를 이 사람들은 <그분>의 신탁으로 재단한다. 자연 손발이 맞지 않는다. 씨바 내가 회장 아들도 아니고 그분이 좋아할지 어떨지 알게 무어냐. 나는 내 맘도 모르는 사람인데 면식도 없는 회장님의 속을 알게 무어냐. 이렇게 서로 답 없는 얘기를 하는 사이 시간은 자연히 늘어지고 이런 윗분과 회의를 하고 나면 괜히 빈정만 상한다. 어쩌라고?


미련한 대답 같지만 정면 돌파밖에 답이 없다. 광고주 의중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경험적으로 내 공을 던졌을 때가 승산이 높으니 하는 말이다. 155킬로 짜리 돌직구 놔두고 괜히 꼼수 피지 말자. 그러다 한 대 맞으면 스타일만 더 구긴다.


안다. 남의 돈으로 하는 일이라 누구나 자꾸 <그분>을 의식하게 된다. 그래도 참아라. 참고 어떻게든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피티에 가서 말하라. <그분>이시여, 당신도 혹시 나와 같은 꿈을 꾸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꾼 그 꿈이 당신이 꿈꾸던 그것이 아닙니까, 하고 말이다. 아님 말고. 게도 구럭도 놓치기 전에. 국 쏟고 거기 데고 하기 전에. 


오래 겪어 보았지만, 그리 영험한 무당이 없더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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