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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05. 2023

삐라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31.

광고라고 다 광고가 아니다.


그대들 모여 앉아 남이 만든 후진 광고를 욕할 때나 자신이 만든 구린 광고를 자조적으로 말할 때 흔히 <찌라시>광고라고 할 거야. 길거리에서 뿌리는 전단지 말이다. 다들 공감하지 않는가, 전단지의 수준 정도는. 근데 나는 찌라시 광고는 차라리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도리어 아름답지 않은가, 저 뇌 맑고 순수한 상업 의지가!


우리가 만나는 51%의 광고는 그 찌라시보다 못한 <삐라性 광고>라고 본다, 나는. 어렸을 적 야산에 골목에 심심찮게 널려 있던 그 삐라. 조악한 인쇄 하며, 그 말도 안 되는 설레발 꼬락서니라니. 세상이 좋아져서, 기술이 발달해서 광고에 기름기가 흐른다 뿐이지, 화장발만 딱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그 많은 광고가 여전히 70년대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고 거기에 왜 한 몫 보태지 않았겠는가만. 누구의 탓을 할 것도 없이 참담하고 맥 빠지는 일이다.

 

들은 얘기로, 일본의 스포츠잡지 <Number>의 기사 원칙을 하나 소개한다. <우리는 점수판이 아니라 선수의 발에 전해지는 촉감에 집중한다> 어떤가, 그대가 지금 구상 중인 크리에이티브가 심층과 이면을 들추려고 하고 있는가? 사람에 대한 한 뼘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가? 생각의 스펙트럼을 단 1cm라도 늘이고 있는가? 세상에 내어 놓으면 <주목할 만한 시선>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시장의 습관, 카테고리의 습관, 광고주의 습관, 대행사의 문화적 습관... 핑계는 차고 넘친다. 쉽게 가려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쉬운 게 이 바닥 일이다. 당연히 얼마 못 가겠지만. 심하게 얘기하자면,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한 모든 광고는 <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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