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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05. 2023

식판-평판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34.

미안하다, 또 옛날 영화 얘기다.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가 있다. <작품을 만들자. 하지만, 이번은 아니다> 그대는 어떤가? 이번 프로젝트를 작품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철저히 맞춰 잡고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인가? 그리고 그게 당신 뜻대로 될 것 같은 전망인가? 과연 아직은 없는 그대의 <작품>은 오로지 당신이 맘먹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광고대행사의 주요한 갈등 중의  하나가 이 대사에 응축되어 있다. 당장의 식판을 따르자니 평판이 울고, 조금 긴 안목으로 평판을 따르자니 왠지 당장의 식판이 위축되기 십상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광고대행사의 미래는 <평판의 확대 재생산>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광고대행사의 운영원칙은 <크리에이티브가 미래의 영업>라는 사실이다. 단위를 팀으로 축소시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우선에 먹고살 일을 확보해야 평판이고 미래고 있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면한 프로젝트를 광고주 코드에 어떻게든 맞춰 잡아야 한다는 <골룸>의 현실론과, 장기적으로 안정된 인비테이션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은 좀 힘들더라도 대행사의 칼라와 평판이 업계에 널리 알려지는 게 우선이라는 <스미골>의 당위론은 언제나 부딪히게 되어 있다.


유독 서비스업임을 강조하며 광고주의 취향과 그분의 심기에 노심초사하며 광고주의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오로지 <을>로서의 입장에 충실하고, 광고주의 <지적 사항>을 교조처럼 떠받들며,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크리에이티브의 모험심과 실험정신을 세상 물정 모르는 넘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하는 <골룸>이 당신 회사의 경영자라면 서서히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이상론이라고? 그렇다면 몇 년 뒤 그대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보라. 당신 회사의 얼굴마담으로 포트폴리오에 등재되어 있는 <작품>들의 히스토리를 되짚어 보라. 거기 뭐가 남아 빛나고 있는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만이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작품>만이 회사와 그대의 <서스테이너빌리티(지속가능성)>를 높여 줄 수 있다.

 

작품을 만들자. 하지만, 이번은 아니다. 도대체 그 <다음 기회>라는 건 언제란 말인가. 오기는 오는 건가. 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기는 한단 말인가? 그대의 회사에는 골룸이 많은가 스미골이 많은가, 그대는 주로 골룸이 되는가  스미골이 되는가? 작품을 만들어 본 사람은 때로 쉬어갈 수 있지만, 맨날 쉬어 가던 사람에게 작품의 시간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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