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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10. 2023

성인광고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36.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성인 취향의 광고가 있는가?


오해 마라, 그대가 생각하는 그 성인, 그런 거 아니니까. 진정성의 부재에 관한 얘기다. <산낙지 論>에 이어지는 이 꼭지는 이 바닥에서 함부로 쓰이고 있는 <진정성>이라는 말의 훼손과 관련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실제로 작품 속에서 구현된 것을 많이 보지 못했다. 프레젠테이션의 논리 부분에서나 광고 잡지의 인터뷰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이 말은 내가 보기에 오로지 레토릭으로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진정성 자체는 부재하지만 진정성이란 말은 남용되는 역설의 상황이다.


딱 한 겹 말초적인 어린 소비자들의 감성에 충실히 복무하는 것으로 면피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인터뷰용으로 마련한 세탁 용어가 바로 이 <진정성>이 아닌가 한다. 내가 비록 이렇게 먹고살고는 있지만 내 재능과 이상은 좀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가열찬 변명. 내가 만든 이 광고는 엄연한 시장의 요구에 의한 것이며, 설사 그것이 아이들 공작 숙제와 학예회 수준의 광고라 할지라도 그것은 정당한 상황 논리의 총화일 뿐이라는 합리화.


그러다 보니 일건 자신이 만들어서 판 광고에 대해 크리에이터 스스로 부인하는 황당한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한 건 그게 아니었다고 아무리 소주병을 비운다 해도, 아무리 그럴싸한 상황 논리 뒤에 몸을 숨긴다 해도 책임은 고스란히 크리에이터 자신에게 돌아간다. 아무리 자책해 봤자 떠나간 작품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로지 항간을 떠도는 얄팍한 감각에 봉사하는 크리에이티브는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이자 광고주 그분과 경영층의 실적주의에 영합하는 <질 낮은 합의>에 불과하다. 실존은 무겁고 핑계는 가볍다.


한 개인의 삶에(작품에) 시대의 양이 얼마만큼 들어가 있는가의 정도가 진정성을 재는 척도라고 한다. 그대가 소주 마시며 울분을 풀 힘이 남아 있거든 당신의 다음 작품에는 어디 한 번 기꺼이 시대를 담아 보자.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인생이 이렇게 깊고 향기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보여 주자. 아이들이라고 늘 찧고 까부는 것만 소비하란 법은 없다. 아이들에게도 성인광고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자란다. 세상을 자라게 만드는 상품, 세상을 키우는 광고, 더 이상 호사가 있겠는가.


성인이란 제대로 큰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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