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강 Jan 10. 2023

쇳복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37.

일단 알겠구요, 윗선에 얘기해 보겠습니다.


...라고 클라이언트 담당자가 얘기했다는 것은 얼른 다른 시안을 준비하라는 뜻과 같다.  윗선까지 도달하는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느라고 아이디어는 걸레가 된다. 심지어 지나가는 직원들 죄 불러들여, 손들어봐, 하고 다수결로 결정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국민 참여 재판이다. 지 윗놈 의중을 짐작 못하는 멍청한 광고 담당자의 헛된 디렉션에 퀄리티 떨어지고 사람 다치는 일이 태반이다. 제 일도 아니면서 괜히 회의에 따라 들어왔다가 밥값 한답시고 한 마디씩 늘어놓는 옆 팀 사람들 때문에 멀쩡한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걸레가 된다.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자신들의 불운한 광고주福을 탓한다.


자신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항상 살해당한다고 불평하는 그대여.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이상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이 크리에이터의 본질 아닌가. 그러니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go>라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관철하는 것이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고 뭐가 좋은 아이디어인지 가늠할 객관적 기준도 없는 일을 (실패하면 뒤집어쓸 비난과 책임을 무릅쓰고) 망망대해에 론칭시키는 일이 바로 그대의 Job이기 때문이다. 어찌 거기에 쇳복(셋복? 쎄복? 나는 이 말의 맞춤법을 모르겠네)이 없겠는가? 뒤통수로 날아드는 돌은 피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불운하다. 다만 확률 개선의 여지는 조금 있다.  가만 보니 명망 높은 크리에이터들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노력만큼 아이디어를 파는 일에 진심이더라. 광고주 의사 결정권자와 직접 소통하더라. 나아가 의기투합하더라.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최고 권력자가 되는 길이다. 아니면 최고 권력자의 곁이 되거나. 크리에이티브도 권력 관계라는 사실에 새삼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정작 여기서 감탄해 마지않아야 하는 포인트는 다른 데 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팔아먹었을까?

 

좋은 캠페인은 광고주가 만든다, 대부분. 어떤 아이디어를 내느냐 보다 어떻게 파느냐가 때론 훨씬 중요하다. 시대를 잘못 만난 아이디어의 불운만 탓할 일이 아니다. AE만 바라보고 있을 일도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성인광고 論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