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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16. 2023

반바지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38.

아직도 많은 골프장에선 반바지 플레이가 금지되어 있다. 


골프라는 운동이 매우 예절을 중요시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좀 달리 본다. 골프는 여전히 허세와 위엄으로 가득한 배타적 운동이라고 말이다. 광고판 역시 여전히 권위의식과 엄숙주의가 팽배하다. 꼴 난 등산복(?) 한 벌 팔면서도 그렇게 폼을 잡으려 하니 몇 억짜리 아파트를 팔려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그 어마무시한 아파트 이름들에 입이 떡 벌어지지 않는가? 아무튼 대한민국 광고판은 찧고 까불어서 대책 없이 혼을 빼놓거나, 아니면 게나 고동이나 폼을 잡아서 비위를 틀어 놓거나, 딱 두 가지다. 이 바닥의 시간은 왜 이리 느리게 흐르는가.  시대착오는 일종의 罪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작품 중에 <마음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봤다. 오, 이거, 그럴싸하다. 마음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라면 과연 어떤 사람인가. 무릇 격식을 따지지 않으며, 정치적인 웃음을 짓지 않으며, 마음에 없는 말을 꾸미지 않으며, 인간적이고 소탈하기가 그지없어서 비록 그 이의 언행이 깍듯한 예절을 갖추지 않았더라고 왠지 믿음이 가고, 언제고 다시 만나서 탁주라고 한 사발 나눠 마시고 싶으며, 이 각박한 세상에 몇 안 되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가 만드는 광고도 살아있다. 엄연히 개성과 인격이 있다. 나라면 내가 만드는 광고에 반바지를 입히겠다. 누가 내 작품을 <마음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처럼 대해주면 영광이겠다.

 

마음에 반바지를 입은 광고는,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

진정한 인간관계의 성립을 지향한다.

<타깃>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한다>.

스스로를 <낮추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다가온다.

유머러스하고 인간적 허점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 않으며,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좀 삐뚤빼뚤하더라도, 

우회하거나 곡선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주는 거 없이도 왠지 친근하고 유쾌해지는 그런 사람과 같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

기본적으로 <善意>의 커뮤니케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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