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강 Jan 16. 2023

뽕브라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39.

브라가 불편하면 <키높이 구두>論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질 떨어지는 비유러니 생각하기 바란다.

 

나는 이 바닥의 많은 광고들이 출발선에서부터 후져질 조건을 가지고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생겨먹은 것>보다 더 좋은 척, 더 나은 척하려는 고질병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아닌가 싶다. 광고주와 광고쟁이 몇 사람이 회의실 밀약을 거쳐 만든 허상(虛像)에 사람들이 끝까지 속아줄 거라는 자신감 넘치는 착각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본인들 말고는 전부 호구로 보이는가. 우리가 때로 과장하고 은유하고 비교하는 것은 오직 표현의 감칠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일 뿐, 팩트에 뽕브라를 씌우는 것과는 얘기가 다르다. 


가슴이 납작하면 납작한 대로의 미학을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또, 굳이 납작한 가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늘씬한 다리나 상쾌한 인간성을 가지고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이냐. 본인으로서야 키가 컸으면 좋았겠지만, 톰 크루즈가, 임시완이 꼭 <키> 가지고 승부해야 하는 것이냐?  꼭 키 높이 구두를 신어야 제맛이 나느냐는 얘기다.


우리 사람 사는 관계도 똑같지 않은가. 돈 있는 척, 많이 배운 척, 집안 대단한 척하는 사람과 그대 같으면 깊이 사귀고 싶겠는가, 아니 잠시라도 아까운 짬이나 곁을 내주고 싶기나 한가 말이다. 실제보다 <있어 보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실제보다 <없어 보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내 광고가 저렴해지는 꼴은 참기가 힘들더라. 내 인생이 저렴하다는 뜻이니까.

 

 

마음에 뽕브라를 한 광고는,

본바탕보다는 꾸미는 모습, 늘 실제보다 있어 보이려 애쓴다.

의도와는 달리 받아들이는 사람과 관계의 긴장을 초래한다.

메시지가 아니라 테크닉의 구사에 작품의 초점이 맞춰진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아니하고  <과녁, 타깃> 취급한다.

저 혼자 스스로 <높이는> 태도를 취한다.

자화자찬에 바쁘고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

노골적인 접근 방법을 효과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주는 거 없이 거부감이 들어 경계심이 드는 사람과 같다.

사람의 <지갑>을 노린다.

기본적으로 <底意>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작가의 이전글 반바지 論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