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강 Jan 18. 2023

영수증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40.

발연기를 옆에서 직관하는 일은 괴롭다.


친구가 딴 소리 하는 걸 지켜볼 때가 있다.  사정을 아는 입장에서 가만히 보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이 자식 이런 연극을 왜 하나 싶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작품 속에 푹 빠져들질 못하고, 아이고 찍느라고 고생했구나 하고 느껴지는 그런 작품들이 있다. 이른바 망작이다. 헛수고한 거지.

 

굉장히 오랫동안 계획한 것도 같고, 야심차고, 조사도 꽤 많이 한 것 같고, 조사 보고서나 기획서 두께를 상상만 해도 가히 엄청날 듯한 그런 광고들이 있다. 보는 순간 작품이 아니라 작품 뒤의 리허설이 보이는 광고. 광고도 작품인지라 우선 작품 자체의 재미에 빠져들게 만들어야 정석인데, 이건 뭔가 앞뒤가 단단히 뒤바뀐 꼴이다. 이 바닥에서는 흔히 이런 작품들을 <기획서가 들여다보이는 광고>, <영수증 광고>라고 한다. 한마디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 같다는 뜻이다. 맑고 순수해서 들여다보이는 게 아니라, 이미 견적 나왔는데 아직 혼자 계산기 두드리고 있는 발연기가 들여다보인다는 얘기다.


준비가 너무 철저해도 병이다. 아니 준비한 거 까지는 좋은 데 그 티를 지우지 못하는 게 병이다. 준비한 티가 너무 빤히 나면 그 저의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에구, 니들이 고생이 많다. 니 들이 고생을 너무 많이 한 덕에 구매의욕이 훨훨 타오르기는커녕 일단 채널부터 돌아가고 본다.

 

선물을 할 때 가끔 <프라이스 택> 떼는 것을 깜빡할 때가 있다. 비싼 선물이면 비싼 대로 속이 들여다보이고(뭐야, 돈 자랑하는 거야), 사소한 선물이면 사소한 대로 무신경해 보이거나 혹은 정말 사소해 보인다(당신이란 인간이). 우리 광고비가 얼마나 비싼가. 돈 쓰고 욕먹지는 말자. 영수증은 뒀다가 정산할 때나 잘 써라.

작가의 이전글 뽕브라 論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