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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24. 2023

봉테일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44.

대한민국 영화계의 양대  크리에이터는 단연 박 찬욱과 봉 준호다. 


나는 두 감독을 모두 좋아한다. 세간의 비평에 따르면, 박 찬욱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영화를 만들어 좋고, 봉 준호는 우리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어 좋단다. 실로 그렇다. 광고의 FM에 따라 얘기하자면, 나는 박 찬욱도 좋지만 우선 봉 준호를 인용하고 싶다.  왜냐하면 광고 창작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다는, (누군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듣고 싶은 얘기라... 함은 하고 싶은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 하고 싶은 얘기가 누군가 듣고 싶은 얘기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장난이 아니다. 이야기의 출발선상에서 그대의 개별성을 충분히 존중한다. 그러나 그 개별성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획득하리라는 계산이 선행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더 어렵나? 쉽게 말해서 결과적으로 흥행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흥행의 방식>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도 여태 하지 않았던 메시지를 제안하고 싶은데, 과연 이 메시지가 세상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다수의 좋아요를 얻어 힘 발을 발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순수 예술이라면 <아무도 몰라 준대도 좋아>라는 입장이 통용되지만, 광고 크리에이티브에서는(상업 영화가 그러하듯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바닥에서 <아무도 몰라주는 수준 높은 광고>는 문제작일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실패작에 가깝다.  사실 패를 까기 전에 누가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 통찰력과 의지가 필요할 뿐이며, 그대의 안테나를 in-pilling(심기)가 아니라 out-drawing(끌어내기)에 맞추라는 충고일 뿐이다. 광고의 독자들이 그들 자신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로 갈망하고 있는 그 무엇, 본인들도 몰랐던 마음속 깊은 곳의 Code를 터치해라, 거기가 포인트다. 공식이 있냐고? 방법이 있을 뿐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셨다,  석가세존께서는.

 

누군가 <보고 싶었던> 광고를 아무도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지르자. 후회 없이 지르기 위해서는 다만 용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실 지르기 이전에 이미 그대의 계산 속으로 대충 견적이 나와 있어야 한다. 그건 그대가 <사람들>을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사랑받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분께 사랑받으려면 그분께서 뭘 원하는지 알고 있어야 할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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