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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24. 2023

야수와 미녀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46.

<시장 경제>, 그 덕에 광고쟁이들도 먹고 산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오늘날의 지고한 시스템 <시장 경제>는 물질적 안녕의 자동적 증대를 교조로 한다.  오로지 매출과 점유율이 장땡인 곳이 시장이다. 그래서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사람의 모든 것을 한 데 넣어 갈아엎어버리는 이 시장의 무자비함을 비유하길 <악마의 맷돌>이라 설파한 바 있다. 자, 시장 시스템에 기대어 먹고사는 그대여, 과연 욕망의 취급설명서를 작성하는 것이 광고 크리에이터들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인가?


광고는 기업 활동이며 기업 활동에 종사하는 우리는 시장이라는 무자비한 야수와 더불어 살아갈 운명을 타고났다. 피할 수는 없지만 다만 선택의 여지는 있다. 야수와 맞서 싸우며 똑같이 야수가 되는 길이 하나요, 비록 야수와 함께하는 운명을 피할 순 없을지라도 <사람의 꼴>을 견지하고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며 공생하는 길이 있다. 전자는 마케팅을 전쟁으로 보는 사람이요, 후자는 마케팅을 소통으로 보는 사람이다. 전자는 광고를 저의로 이해하는 사람이요, 후자는 광고를 선의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제는 어린아이도 모두 안다, 기업 활동의 모든 구라는 오직 '나의 지갑'을 털기 위한 행위임을.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 자복하고 방법을 바꿔보자. 바보 같은 말이지만 바보의 길을 한 번 걸어보자, 오히려. 거꾸로.

 

그러기 위해서 그대는 우선 <소비자>라는 용어를 수첩에서 지워라. 그리고 그 자리를 <사람>이라는 말로 바꿔 넣어라. 무자비한 야수처럼 보이는 시장도 결국은 울고 웃고 감동하고 화내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것이다. 소비자 또는 타깃이라는 말을 쓰는 그대는 시장을 한 마리 야수로 보는 것이다. 시장 점유율이라는 도표로 취급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기뻐할까 상처받을까 고민하는 그대는 시장을 마음이 통하는 한 사람의 인격으로 보는 것이다. 선의를 지닌 이웃으로 대하는 것이다.

 

지갑을 털려는 광고에서는 크리에이터도 한 마리 야수에 불과하다. 짐승의 세상이다. 마음을 열려는 광고에서는 만든 이와 보는 이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  시장을 굴복시키려 하지 말고 시장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자. 야수에게 미녀가 그랬듯이. 


결국 진심만이 통하는 세상이 될지 혹시 아나? 자본주의가 안 해 본 건 그것뿐이니까. decent life. decent cre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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