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나부랭이에도 진실(Truth)은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 진실에 동의한다면 얘기는 쉬워진다. 남은 일은 그 진실을 흥미롭게 꾸미는 것으로 충분하니까(Well told). 그러나 정작 광고가 잘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모두가 동의하는 진실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 진실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있을 때가 바로 그때인데, 내가 알기로 우리 일의 열에 아홉이 그러하다. 그대라면 어찌하겠는가. 광고주의 높은 분께서 싫어하실지도 모르는 이야기. 광고대행사의 매니지먼트가 식권을 잃을까 봐 겁내는 이야기. AE가 못내 자신 없어하는 이야기. 광고의 최종 소비자가 아직은 한 번도 접하지 못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 심지어 그 업계의 울타리에서는 금기시되어 있는 이야기가 바로 지금 그대가 발견한 <진실>이라면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난감하네.
<불편함>이야말로 의문의 여지가 없는 크리에이티브의 DNA라고 들어왔다. 불편함이야말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원천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하여 그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면 그대야말로 광고계의 진정한 용자. 그 불편함에 정면으로 맞서 그대가 갈고닦은 공력으로 다듬어 불편해 마지않는 사람들의 목구멍에 매끈하게 삼키게 만드는 것, 이게 진짜 기술(Truth Well told)이다. 지난한 과정이다.
반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의 대안은 <달콤한 거짓>뿐이다. 닥치고 그냥 뭔가 다른 것인 체하기 시작한다. 그저 뭔가 못 보던 그림, 못 들어본 노래를 들려주는 게 기술(Something Well told)이라 우긴다. 얼핏 굉장히 실험적으로 보이는 그들이 상복하는 것은 사실 하루 세끼 <안전빵>이다. 화려한 포장에 속지만 않는다면, 그 포장의 내용물이란 게 기실 그 흔해 빠진 <안전빵>이란 걸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세상에 <안전빵>만큼 달콤한 것이 흔한가. 먹고 탈이 날 일도 없고 누가 비난할 일도 없다. 밑져봐야 본전이다. 관습이라는 밀가루로 반죽을 하고, 상투성이라는 앙금을 넣어 만든 안전빵을 나누어 먹고 소화 잘 된다고 배를 두드린다. 광고주와 대행사와 소비자가 삼위일체로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절묘한 평화를 이룩했노라고 자축한다. 크리에이티브에서 달콤한 거짓이란 관습적인 것과 타협하는 것이다. 사소한 기술로 진실을 기만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만들어 낸 평화가 있다 한들 그것은 질 낮은 평화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속인 대가로 얻은 질 낮은 평화, 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만의 <거짓된 합의>를 일삼는다. 거짓된 합의를 일삼는 회의실 밀약. 이것이 이 바닥을 지배하는 <Cheating Creative>의 근원이다. 나도 그대도 모두가 공범이다. 외면, 묵인, 방관, 동조 역시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 연루된 공모다. 나는 아니란 말 쉽게 하지 마라.
진실을 배제하고 나면 Well Telling의 기술은 이 바닥에 차고 넘친다. 근데 그게 Well Telling 된 걸까, 진짜? 안전빵을 상복하는 그대, 근데 그 빵을 왜 먹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나 나는 거야? 어려운 주문을 열심히 외는 그대, 근데 정작 소원이 뭐였는지는 기억이나 나나? 소원을 말해봐! Best safety lies in fear(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제일 안전해! 셰익스피어 말씀이시다)
♤ Truth well told는 광고대행사 맥켄에릭슨의 슬로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