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그림책과 공연 이야기
1987년과 1988년 사이,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에 힘입어 “민족음악연구회”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민족음악연구회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던 작곡과 동기의 추천으로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대부분 음악대학 3,4학년 학생들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음악가들이 중심이 되었고, 당시 서울대학교 이건용 교수와 목원대학교 노동은 교수가 젊은 음악인들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었다. 1988년 몇 차례 세미나와 이런 저런 모임을 거쳐 1989년 민족음악연구회가 창립되었으나, 나는 준비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미국 이민 생활 중에도 몇몇 회원들이 꾸준히 연락을 해 줘서, 민족음악연구회 공연을 위해 필요한 작품을 작곡해서 보내주곤 했고, 1993년 잠시 귀국했을 때도 민족음악연구회 모임이나 워크샵 등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1996년 나는 국내에서 음악회를 하기 위해 두 번째로 일시 귀국했다가, <푸른 자전거> 제작에 들어가면서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했다.
민족음악연구회에는 몇 개의 소모임이 있었는데, 피아노 소모임에서 나에게 모임의 기획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다. 당시 나에게는 음악적으로 몇 가지 방향의 진로가 놓여 있었는데, 한 가지 가능성이 더 생긴 셈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민족음악연구회 피아노 소모임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돌이켜 보면 이 당시의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때의 결정은 현재까지의 내 삶에 엄청나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민족음악연구회 피아노 소모임에 들어가 1997년 <민요가 있는 피아노 한마당>을 거쳐 1998년 <드라마가 있는 피아노 한마당>을 기획하면서 피아노 소모임을 자생적인 모임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드라마가 있는 피아노 한마당> 공연 중에 영상이 필요한 꼭지들이 있었는데, 회원 중에 그림책 출판사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출판사와 협업을 하게 되었다. 공연을 잘 마치고 출판사에서 그림책 작가 한 분을 소개해 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림책 작가 류재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분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림책이 있는데, 글은 없고 그림만 있는 그림책으로, 글 대신 음악으로 내용을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만나면서 류재수 선생님과 나는 서로에게 신뢰를 갖게 되었고, 함께 <노란우산> 작업을 하게 되었다.
<노란우산>은 류재수 선생님이 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하던 젊은 시절, 일본에서 열린 노마국제그림책워크샵에 참가했을 때 떠올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그림책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 어렵사리 워크샵에 참가했던 류재수 선생님은 마지막 날 아침까지 과제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막막한 생각에 창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고, 숙소에서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았는데, 아이들이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는 모습이 보였다. 당시 교사였던 선생님은 우리나라 학생들 생각도 나고 울적한 마음이 들었는데, 바로 그때, 번쩍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빠르게 7~8장 정도 스케치를 해서 가져갔다고 한다. 지도교수들이 이 그림들을 보고 있을 때 류재수 선생님이 무언가 설명하려고 하자, 이를 제지하며 “당신은 이 그림들로 모든 걸 다 설명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고 했다고 한다. 그 이후 류재수 선생님은 이 그림책을 반드시 그림과 음악만으로 완성하겠다고 결심했고, 글을 넣어서 출판하자는 여러 출판사들의 요청을 뿌리치고 15년여 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고만 있었다는 사연이다.
그림책 작가로서 류재수 선생님은 꼼꼼하고 정교한 그림책 작업을 하는 분으로 유명한데, <노란우산> 역시 엄청난 분량의 스케치를 해내고 있었다. 나는 막연하게 기다리기도 애매한 생각이 들어서, 류재수 선생님이 예전에 작업해 두었던 스케치 중에서 어떤 <노란우산> 세트를 바탕으로 12곡의 피아노 소품을 작곡했다.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운 어린이들도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을 고려해서 서정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그런데 12곡을 완성하고 몇 달 뒤, 류재수 선생님이 수채화로 그리던 그림을 유화로 바꾸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류재수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연주할 수 있는 수준 등을 고려하지 말고, 그냥 순수하게 예술적으로만 접근하자고 했다. 그래서 음악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림책 장면 일부가 바뀌었고, 그에 맞게 총 13곡의 피아노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그 동안 류재수 선생님은 <노란우산> 완성작만 5편을 작업했는데, <노란우산> 역시 우리나라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그림책이었기에 출판사에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마케팅 소스에 관해 여러 가지 연구를 했고, 그 중에서 음악과 게임 등을 포함한 CD-ROM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CD-ROM 제작 때문에 그림책 제작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는데, 류재수 선생님은 그 사이에 또 한편의 <노란우산>을 완성했고, 이 마지막 버전이 그림책으로 출판되었다. 류재수 선생님의 <노란우산> 마지막 버전은 이전에 완성한 것들과 비교해 보면 확실하게 다른 특별한 느낌을 내게 주었다. 빗줄기를 그리지 않고 비 오는 느낌을 표현하시겠다는 의도가 기막히게 표현되었고, 대가답게 필체도 매우 자유롭다. 시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강하게 다가오는 그림으로 <노란우산>이 완성되었다. 출판된 지 몇 년 후에도 류재수 선생님은 몇 장면을 새로 그려 수정했다. 류재수 선생님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으면, 하나의 작품을 위해 꾸준히 생각하고 노력하시는 모습에 항상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노란우산>의 CD-ROM 제작은 불발되었고, 대신 13곡의 피아노곡에 덧붙여 <비 오는 세상>이라는 동요가 음반 마지막에 추가되었다. 피아노 연주는 <푸른 자전거>를 연주했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기인 피아니스트 한정희가 맡았다.
2001년 <노란우산>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그림책과 음악 CD로 구성된 책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콘서트홀에서 출판기념 음악회도 열었다. <노란우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접하는 전혀 새로운 형식의 그림책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출판 초기부터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앞서 이야기한 민족음악연구회 피아노 소모임은 2001년 서초구의 한 소극장과 협약을 맺고 매월 주제가 있는 피아노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3월부터 <피아노 플러스>라는 시리즈로 음악회를 시작했는데, 관객이 잘 들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극장과의 관계가 점점 좋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7월 방학을 맞아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노란우산>을 포함해서 <피터와 늑대> 등 영상이 있는 음악동화를 중심으로 구성해서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한마당>을 올렸다. 이틀에 걸친 이 음악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공연 당일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지방에서까지 관객이 찾아왔다. 이 음악회의 성공으로 이후에는 연말까지 매 달 같은 공연을 계속했다. 극장에 수익 일부를 주고, 배우 등 객원 출연자들에게 지급하면 남는 돈은 없었지만, 모임 구성원들이 의기투합하여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고, 결국 극장과의 관계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이 공연에 주목하고 있던 음악평론가 탁계석 선생님의 소개로 그해 가을 초청 공연을 가졌다. 공연을 끝내고 정산해 보니 초청료 중 200만원 정도가 남았다. 그 돈을 다시 공연에 재투자할 목적으로, 종로에 있는 400여석 규모의 극장을 3일 5회 공연으로 대관하고 계약금을 냈다. 공연 시기는 이듬해 2월 초, 공연 제목은 <2002 Upgrade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한마당>이었다. 이 음악회는 공연 보름 전에 매진되었고,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극장 측으로부터 연장 공연 제안을 받아 2월 말에 14회 공연을 추가로 더 했고, 이 공연 역시 매우 성공적이었다. 당시 어린이 공연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들이 꿈틀대고 있었는데,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한마당>은 재미도 있고 품격 있는 가족 음악회로 어린이 공연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노란우산>이 있었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본 나는 본격적으로 어린이 공연 제작에 뛰어들게 된다. 그렇게 2002년 여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던 옛 친구와 함께 이바지 프로덕션이라는 어린이 음악 전문 기획사를 설립했다.
2002년은 <노란우산>이 미국에서 출판된 해이기도 하다. 작품이 워낙 좋았고, 류재수 선생님과 출판사가 오랫동안 해외 시장을 공략해 온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해 말, 뉴욕타임즈에서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최우수 그림책 10편”에 우리나라 그림책 최초로 포함되었다. 같은 해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행사 타이틀 이미지로 <노란우산>이 사용되었고, 역대 최우수 그림책(Best of Best) 40선에 포함되었다.
글 없는 그림책 <노란우산>은 우리나라 출사판로서는 상당히 모험적인 시도였다. 당시 우리나라 어린이책 시장에서 쉽게 받아들여질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우리나라 독자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고, 뉴욕타임즈 최우수 그림책 선정 이후 상당히 뜨거워졌다. 반면 해외에서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였는지, 대단한 상을 받은 데 비해서 반응이 크지 않았다. 제일 처음 라이센스 출판된 나라는 이스라엘이었고, 동아시아 한 나라와 협의가 진행되었다고 했었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일본은 출판 여건이 충분했는데 일이 좀 꼬였다.
2003년 초, 나와 친구가 설립한 이바지 프로덕션에서 <노란우산>을 타이틀로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올렸다. 내 작품을 중심으로 음악동화, 동요, 클랙식 연주 등 다채로운 코너로 구성한 특이한 음악회였는데,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어 초청 공연도 다니고, 서울 경기의 여러 지역에서 자체 기획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언론으로부터도 꽤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 공연은 출연자가 너무 많고 공연 운영하기가 복잡해 점점 지치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여러 가지 복합장르 공연을 시도하게 된다.
그림책 <노란우산>은 몇 가지 사정이 생겨 이례적으로 출판사가 한 번 변경되었다. 2007년부터 보림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되었는데, 음반 녹음도 새로 했다. 류재수 선생님의 원래 아이디어를 살려 문학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동요 <비 오는 세상>은 음반에서 제외되었고, 대신 13곡의 피아노 곡들에 간단한 제목을 붙였다. 제목도 없는 피아노 음악이 독자들에게 다소 불친절한 느낌을 준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것도 원작의 의도와는 벗어나는 일이긴 했지만, 실용적인 면도 있었다. 보림출판사로 옮긴 뒤 해외 라이센스 출판이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프랑스어 판은 벨기에의 출판사가 관할하게 되었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출판되었고, 좀 늦게 스페인도 합류했다.
몇 년 전부터 출판사에 고민이 하나 생겼다. 독자들로부터 “집에 CD 플레이어가 없어서 음악을 못 듣는다”는 연락이 많이 온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이미 그 전부터 <노란우산>의 CD를 제거하고 QR 코드로 바꾸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2020년 10월 출간된 23쇄부터 보림출판사도 QR 코드를 스캔하면 휴대폰으로 들을 수 있는 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CD가 없어진 <노란우산> 견본을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고, 나도 음반 작업을 안 한 지 꽤 되었는데, 막상 변화된 <노란우산>을 받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도 QR 코드를 통해 연결된 <노란우산> 음악 감상 페이지는 근사하고 음질도 좋았다.
<노란우산>은 그림책을 바탕으로 그 동안 여러가지 형태의 공연과 활동이 이루어졌다.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도 발표했고, EBS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공연이 방송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음악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되었다. <노란우산>은 여전히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의 <노란우산>이 세상에 태어날지 모를 일이다.
◆ 아티스트 소개
류재수
동화 작가. <백두산 이야기>, <노란우산>, <돌이와 장수매> 등 우리나라 그림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그림책 역사가 이 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세상과 삶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갖고 계시고, ‘음악 매니아’이기도 하다. 고향인 충남 홍성으로 귀향하신 뒤로는 자주 못 뵙지만,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