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속학의 개척자 임석재 선생님을 기리며
초등학교 시절 끼고 살던 동시집이 하나 있었는데, 간간이 마음이 움직이는 동시를 골라 노래를 만들곤 했었다. <노란우산>을 출판한 뒤 어느 가을 날, 두 돌이 좀 넘은 첫 아이를 보다가 문득 아이를 위해 동요집을 하나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작곡했던 동요 악보들을 꺼내 뒤적거리다가, 출판사에 동요집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출판사에서 마침 동시집을 만들려고 골라둔 동시들이 있다며 상당히 많은 동시를 건네주었다. 처음 접하는 동시도 여러 편 있었고, 노래가 될 만한 동시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그 해 겨울 내내 동요를 작곡하고, 어린 시절 작곡했던 노래들 중에도 몇 편 추려서 16편의 동요로 정리했다. 그리고 봄에 녹음을 했는데, 전곡을 서양악기와 국악기를 섞어서 어쿠스틱 반주로 녹음한 흔치 않은 동요집이 되었다. 동요집 음반 1장과 더불어, 가사가 된 동시들에 류재수 선생님의 그림을 덧붙여서 음반 크기의 동시 그림책을 묶은 독특한 상품이 만들어졌다. 제목은 <귀뚜라미>, 첫 번째 트랙에 실린 타이틀 곡도 <귀뚜라미>였다. 음반도 아닌, 그림책도 아닌 이 묘한 상품은 유통 방법도 묘연하여 결국 제대로 판매되지 못했다.
동요집 <귀뚜라미> 작업을 하면서 “임석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요집 <귀뚜라미>에 임석재 동시를 가사로 한 <귀뚜라미>와 <과자 먹으니까> 등 두 곡을 실었다. 동시 내용도 신선하고, 언어도 매우 감각적이어서 인상에 많이 남았고, 젊은 동시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998년에 93세로 돌아가신 우리나라 민속학의 선구자였다. 그런데 이 분이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셔서 매일 저녁 사랑방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단다. 우리나라 옛이야기를 소재로 한 동시도 무척 많이 남기셨는데, 순수 창작이 아니라고 어린이 문학계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임석재 선생님이 옛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남기신 동시들은 전부 노래 가사 형식에 맞춰 지어졌으니, 나는 보물창고를 만난 셈이었다. 임석재 선생님도 자신의 동시들이 노래로 불리기를 희망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임석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임석재 선생님의 따님 중 한 분이 인류학과 교수였다. 임돈희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선정 국제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 분을 찾아가 임석재 선생님에 대한 자료도 더 많이 얻고 노래 만들기 등에 대해 상의도 했다. 임석재 선생님의 손녀 중에 동화작가가 있다고 하여 임혜령 작가도 소개 받았다. 그렇게 나는 임석재 동시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바지 프로덕션”에서 공연 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즐거운 세상> 음반 발매 기념 음악회가 반응이 좋았고, 내가 작곡한 여러 편의 음악동화들은 이미 주목 받고 있었다. 첫 작품으로 <노란우산>을 중심으로 만든 음악회가 꽤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노란우산>은 동요와 클래식, 음악동화 등을 섞어서 만든, 어린이를 위한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음악회였다. 좀 더 잘 짜여진 구성의 음악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석재 동시로 만든 노래 중에서 <이상한 밤>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두 번째 음악회로 <이상한 밤>을 준비했다.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혼합한 실내악단과 어린이 합창단 등이 출연하는 규모가 큰 어린이 음악회였다. 임석재 시를 노래한 동요 <이상한 밤>이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했다. 어린이날에 맞춰 2일 4회 공연을 계획했고, 언론 보도도 많이 되었다. 첫 공연부터 앵콜이 터져 나왔다. 앵콜이 나온 줄 모르고 대기실로 돌아가는 연주자들을 다급하게 다시 불러내어 <이상한 밤>을 앵콜로 연주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으나 흥행은 적자였다. 그래도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내용과 출연진을 수정하면서 공연을 이어갔다. 그렇게 2003년부터 2004년 초까지 <노란우산>과 <즐거운 세상>, <이상한 밤> 등의 음악회를 꾸준히 해 나갔다.
공연을 하다 보니 음악회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이야기가 더 붙어야할 것 같았다. 임석재 동시에 꾸준히 노래를 붙이고 있었는데,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임석재 동시들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이런 특징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가까이 지내던 제자 중에 소리꾼 김정은과 <이상한 밤>의 개선 방안을 의논을 했는데, 같이 작업하고 있다는 연출가 경민선을 소개해 주었다. 내 생각은 임석재 동시로 만든 노래에, 각 노래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간단한 극으로 구성하여 이야기와 함께 노래하는 음악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민선 연출은 노래가 좀 더 극적으로 불리면 좋겠다는 것과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음악극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주었다. "이바지 프로덕션"을 함께 설립하고 운영하던 친구 박병곤과 나는 경민선 연출의 의견을 받아들여 음악극 제작에 착수했다.
저녁마다 사랑방에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임석재 선생을 모델로 만들어낸 “이야기 할아버지”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성해 나갔다. 작가로 임석재 선생님의 손녀인 동화작가 임혜령이 합류했다. 임혜령의 아이디어로 회사 이름을 “톰방”으로 바꾸었다. “톰방”이란, 돌맹이 같은 물체가 연못에 떨어져 나는 소리나 물이 튀겨 퍼져나가는 형상을 표현하는 말로, “텀벙”의 작은 말이다. 톰방의 음악이 점점 퍼져나가 아이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들 회사 이름이었다.
소리꾼 김정은과 함께, 그의 후배인 대학 초년생 권아신과 김봉영이 캐스팅되었고, 배우도 2명이 들어왔다. 경민선 연출은 기본 이야기 틀을 만들고 나서, 출연자들과 즉흥(improvisation)을 해서 세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음악극을 완성하려고 했다. 노래와 몇몇 캐릭터와 간단한 이야기가 주어지고, 연습을 시작했다. 나와 작가와 연출과 조연출, 그리고 출연자들과 몇몇 연주자들이 한 여름의 두 달 동안 힘겨운 연습을 진행했다. 몇몇 연주자들은 함께 즉흥을 하면서 연기에 참여하기도 했고, 작가는 그날그날 작업 결과를 대본에 반영했는데, 매일 지속되는 즉흥 작업에 지친 출연자들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포스터와 무대 디자인 작업에 류재수 선생님의 힘이 보태졌다. 나를 도와주시느라 무더위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 류재수 선생님 특유의 독창적이고 따뜻한 색감과 무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결합하여 색다른 무대 장치들이 만들어졌다. 포스터 디자인도 류재수 선생님의 조카인 일러스트레이터 류영선과 그의 동료 디자이너 현기봉이 자원봉사로 도와주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푹푹 찌는 여름 내내 무모한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놀이노래극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은 당시 강남에 위치했던 동영아트홀에서 여름 방학 내내, 약40여일 동안 공연되었다. 어린이 음악극으로는 흔치 않은 규모와 흔치 않은 완성도의 작품이었고, 언론 보도도 많았다. 여름방학 공연들 중에는 흥행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부대 상품으로 그림책 판매와 매 공연마다 관객들의 생일 이벤트를 여는 등, 함께 한 직원들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어 축제와 같은 여름을 보냈다. 40여일의 공연을 마친 뒤 예매 사이트 회사에서 우리 회사 “톰방”의 담당 직원들을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했다. 티켓을 많이 팔아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적자 폭이 엄청났다. 티켓 판매액은 극장 대관료 지급하고 나니 남은 게 없었고, 스탭 인건비, 출연료 등 여러 가지 비용을 지급할 수 없었다. 생활이 어렵던 한 연주자는 음악 공부를 그만 두기도 했고, 나도 박병곤도 그 해 가을은 생활이 최악이었다. “톰방”은 사실 상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톰방은 6개월 이상 아무 것도 못하고 활동 정지 상태로 보냈다.
공연 적자로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출연자, 스탭들을 달래고 있던 중,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해 처음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2004 국악축전” 중 하루 프로그램을 어린이 음악회로 하게 되었는데, 내가 몇몇 스테이지를 제작하게 되었다. 국악관현악과 어린이합창단 등의 순서와 함께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의 노래 중 3곡을 활용하여 한 스테이지를 만들었다.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에 참여했던 소리꾼들과 연주자들이 함께 준비했다. 음악회에 맞는 새로운 안무가 필요했는데, 류재수 선생님의 소개로 무용가 정영두를 만나게 되었다. 연극을 하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을 배운 그는, 이야기가 뚜렷한 새로운 스타일의 무용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많은 관객들이 그의 무용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영두 무용가는 톰방의 어려운 사정을 배려해서 자원봉사로 3곡의 노래에 안무를 도와주었다. 초청 받은 공연을 제대로 준비할 자금도 없었고,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 공연 출연료도 받지 못했던 제자들이 마음을 모아 주어 함께 학교 연습실 등을 전전하며 힘을 모았다. 깊어가는 가을 날 연습실이 어찌나 춥게 느껴지던지...
그렇게 우리는 어렵사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섰다. 3곡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2,000여명의 아이들, 부모님 관객들과 우리 출연자들이 함께 율동하며 하나가 되었다. 고생 끝에 올린 작품에 열렬한 반응을 보내주는 관객들을 바라보면 항상 감동을 받는다. 기억에 많이 남는 무대였다. 그리고 이 날의 공연은 또 다른 새 작품 탄생을 예비하고 있었다.
박병곤 나와 함께 음악극창작집단 톰방의 공동대표이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가장 친하게 되었던 고등학교 친구. 2002년 직장을 그만 둔 뒤 나와 함께 이바지 프로덕션(현 톰방)을 설립하고 어린이를 위한 음악극을 꾸준히 제작해 왔다.
류재수 동화 작가. <백두산 이야기>, <노란우산>, <돌이와 장수매> 등 우리나라 그림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그림책 역사가 이 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goi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세상과 삶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갖고 계시고, ‘음악 매니아’이기도 하다. 고향인 충남 홍성으로 귀향하신 뒤로는 자주 못 뵙지만,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