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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Apr 19. 2021

페페의 꿈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을 어린이음악극으로

19세기말 프랑스에서 인상주의 음악이 태동합니다. <볼레로(Bolero)>라는 관현악곡으로 유명한 모리스 라벨(Maurice Joseph Ravel: 1875~1937)도 대표적인 인상주의 작곡가 중 한 사람입니다.  


18세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산문, 시, 소설 등 다방면에서 작품을 남겼는데요, 그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자신의 창작품이 아닌, 프랑스의 전래동화들을 수집해서 정리하여 내놓은 〈어미 거위 이야기(Contes de ma mère l'oye)〉(1697)입니다. 


라벨은 1910년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모음곡 <어미 거위(ma mère l'oye)>를 발표합니다. 2명의 피아니스트가 함께 연주하는 피아노 2중주곡인 <어미 거위>는 초연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은 페로의 <어미 거위 이야기>에 실린 프랑스의 전래 동화들 중에서 발췌하여, 이를 피아노 음악으로 표현한 독특한 작품으로 환상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운 5곡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에 실린 곡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곡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de la Belle au bois dormant(Pavane of Sleeping Beauty)>, ‘파반느’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우아하고 느린 춤곡입니다. 두 번째 곡의 제목은 <난장이> 또는 <엄지 동자>(Petit Poucet[Little Tom Thumb])로 번역되는데, 그림동화의 “헨젤과 그레텔”하고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아버지가 배고픔에 못이겨 어린 아들을 숲속에 버리려고 데리고 가는데, 아들이 조약돌을 모아 주머니에 넣고 가는 길에 하나씩 떨어뜨려, 밤이 된 후 달빛에 반짝이는 조약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곡은 <파고다의 여왕 레드로네트(Laideronnette, impératrice des pagodes(Little Ugly Girl, Empress of the Pagodas)>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페로의 동화가 아닌 콩테스 돌로이 동화집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하는데, 미지의 여왕 레드로네트가 목욕하는 동안 인형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표현하는 재미있고 독특한 음악입니다. 네 번째 곡은 너무나 유명한 “미녀와 야수”를 소재로 한<미녀와 야수의 대화(Les entretiens de la belle et de la bête(Conversation of Beauty and the Beast)>, 마지막 다섯 번째 곡은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요정의 정원’(Le jardin féerique(The Fairy GardenLent et grave)>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파고다 무리

이 작품의 초연에 참가했던 라벨의 친구 자크 샬로는 <어미 거위> 모음곡에 감동하여, 같은 해에 이 작품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하기도 했고, 라벨 자신은 2년 뒤인 1912년, 서주와 간주곡 등 몇 개의 악장을 추가하여 발레를 위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 악보에는 제목과 함께 어떤 장면을 표현하고 있는지, 짧은 이야기들이 적혀 있습니다. <어미 거위> 모음곡이 연주될 때 이 이야기들을 공연에 반영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미 거위> 모음곡에 적힌 이야기들을 활용한 공연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06년, 당시 저와 뮤지컬 작사작곡 수업을 같이 하고 있던 극작가 이희준 선생님께 <어미 거위> 모음곡을 소개하고, 이 작품에 포함된 5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은 공연을 하고 싶다고 대본을 부탁드렸습니다. 이희준 작가님은 며칠 만에 <페페의 동화 이야기>라는 대본을 만들어 주셨는데, <어미 거위> 모음곡에 포함된 5개의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잘 엮어 주셨습니다. 마법에 걸려 영원한 잠에 빠진 공주의 친구 ‘페페’가 공주님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로, <어미 거위> 모음곡도 연주하면서 이야기가 뮤지컬 형태로 전개되는 독특한 대본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연으로 제작하기에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미 거위> 모음곡이 연주되면서 원작의 이야기들이 페페의 여정과 연결되어 영상으로 펼쳐지게 되는데, 이를 아무런 대사 없이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문제는 제작비, 바로 ‘돈’이었죠. <어미 거위> 모음곡 연주 시간만 15분이 넘는데, 이 내용을 모두 설득력 있게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려면 상당한 제작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공연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그전까지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 형태로 변형하여 간편하게 공연해 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희준 선생님과 함께 진행하던 뮤지컬 작사작곡 수업을 받은 제자 작가에게 부탁하여 대본을 수정, 뮤지컬 넘버들도 주제곡 한 곡을 제외하고 우선은 모두 안 쓰기로 하고, 클래식 음악과 연극 위주로 진행되는 복합장르 음악극 형태로 고쳤습니다. <어미 거위> 모음곡이 연주되는 동안은 일러스트레이션 그림들을 활용한 슬라이드 영상과 함께 이야기의 내용을 나레이션으로 설명하면서 공연하는 형태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Edu-Concert <페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2007년 2월 첫 공연을 올렸습니다. 

Edu-Concert <페페의 꿈>은 10여년 동안 수많은 배우들과 연출가들을 거치며 조금씩 변형되기도 하고, 꾸준히 공연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6~17년 즈음 연출을 맡고 있던 이태권 연출과 공연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희준 작가님의 원 대본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이를 읽은 이태권 연출이 Edu-Concert 포맷을 유지하면서 뮤지컬 넘버들을 포함한 원 대본에 가깝게 만들어보겠다고 의견을 내어, <페페의 꿈>은 큰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동화뮤지컬 <페페의 꿈>으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뮤지컬 넘버가 공연에 포함되면서 공연 시간이 너무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피아노로 연주되던 <어미 거위> 모음곡 부분은 오케스트라 음원을 활용하여 나레이션 길이에 맞는 정도로 편집하여 공연하기로 했습니다. <어미 거위> 모음곡이 배경음악 역할로 강등되고, 뮤지컬이 전면에 나서게 된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뮤지컬 넘버들이 많아지면서 공연이 좀 더 활기찬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2014년 "페페의 꿈" 캐릭터들

이렇게 변신을 거듭하면서 14년째 공연되고 있는 <페페의 꿈>이 2021년4월,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대전시립교향악단과 함께 공연되는 <페페의 꿈>에서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은 라벨이 직접 발레를 위해 편곡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연주되고, 뮤지컬 넘버들도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불리게 되었습니다. 


<페페의 꿈>을 꾸준히 공연하면서 생긴 꿈이 하나 있습니다. <어미 거위> 모음곡 오케스트라 버전은 발레를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어미 거위> 모음곡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면서 영상과 나레이션은 제외하고, 라벨의 원래 의도대로 발레 공연을 포함시키면 클래식 음악과 뮤지컬, 발레가 어우러지는 아주 특별한 공연이 될 것입니다. 혼자 품고 있던 꿈이었는데, 2021년4월 공연으로 그 꿈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게 되어 새로운 희망이 부풀어 오릅니다.              

새로운 무대 장치가 만들어졌던 2018년 강동아트센터 공연




대전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하는 <페페의 꿈>


2022년4월28일(목)~29일(금) 오전 11시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대전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하는 <페페의 꿈> 


2021년4월29일(목)~30일(금) 저녁 7시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https://youtu.be/aIBzA14hZjo

"과자로 만든 집" ("페페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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