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창작집단 톰방에서 수년간 복합장르 음악극을 제작했던 나는 본격 음악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뮤지컬로 시작할지 오페라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오페라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 분야가 내 전공이니 창작이나 제작 면에서 접근하기 쉬울 것 같았다.
2007년 초 내 제자인 젊은 극작가 이현수와 만났다. 나는 첫 작품을 무조건 로맨틱 코미디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현수는 코미디에 강점이 있었다. 몇 차례 만나 구성과 시놉시스를 정리하고 극작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첫 오페라 <테이크 아웃>의 1막 대본이 몇 달 만에 완성되었고, 전체 구성은 합의가 되었기 때문에 작곡을 시작했다. 3곡을 속도감 있게 쓴 뒤, 작곡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애초에 프로덕션을 세우고 시작한 작업이 아니어서, 바쁜 일상 속에 짬짬이 시간을 내어 작곡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작곡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2009년 상반기 중 2막 작곡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 해 여름, 특히 많은 일들이 몰려들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음악을 맡게 되었고, 여름방학 공연으로 Classic Music Drama <프록스(FROGS)>의 새 프로덕션이 준비되었고,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 세 번째 시리즈 <캥마쿵쿵 놀아보세>도 8월 하순으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9월에 하게 된 광진구문화예술회관 초청 공연 준비도 같이 해야 했고, 그 외에도 악보 작업을 해줘야 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9월 중순 넘어가면서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몸살 초기에 늘 해 오던 이런 저런 조치를 아무리 해 봐도 몸 상태가 좋아지질 않았다. 마침 아는 분이 소개해서 한의사 한 분을 찾았더니, 당장 일을 놓고 쉬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심각하게 주의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3개월 정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2~3주 쉬었더니 많이 회복되었지만,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느낌이어서 조심했는데, 대신 오페라 <테이크 아웃> 작곡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편안한 상태로 작곡을 하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기분 좋게 빠르게 작곡을 해나갈 수 있었다. 이 시기에 <테이크 아웃> 작업을 적잖이 진행했다.
2막 대본은 2010년이 넘어서도 온전하게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2막 후반부는 노래 한 곡 한 곡의 노래 가사를 일일이 같이 검토하며 완성해서 작곡해 나갔고, 겨울이 다 되어서야 보컬 스코어(피아노 반주 악보)를 완성하게 되었다.
오케스트라는 15명 정도 규모로 생각하고 관현악 작업을 하면서 이 작품을 어떻게 무대에 올릴지 고민을 했다. 2011년 활용할 수 있는 공공기관 지원 사업이 몇 가지 있었는데, 생각 끝에 내가 직접 제작하고 지역 문화재단 지원금을 신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항상 내 작품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연출가 장수철 선생님, 역시 내 노래를 많이 불러 주고 내 일에 늘 관심을 보여주는 바리톤 박태영과 제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작품이 대중성이 있고 흥행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하여, 제목을 코믹오페라 <테이크 아웃>으로 결정하고, 광진문화예술회관 나루아트센터에서 8회 공연을 하기로 결정, 대관 계약을 했다. 10월28일부터 11월5일까지 공연이다.
장수철 선생님은 기획, 마케팅 쪽을 알아봐 주시기로 했고, 바리톤 박태영이 캐스팅을 맡았다. 4월 말 캐스팅이 완료 되었고, 6월 하순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신은경과 함께 안경점 사장 안기영 역에 바리톤 박태영, 안경점 옆 카페 사장 라아태 역에 테너 윤승욱, 안경점 직원으로 주인공 진이 역에 소프라노 서승미, 카페에 취직하는 시골 처녀 경이 역에 소프라노 박금란, 손님과 다역을 맡은 메조 소프라노 이선린, 남자 손님 등 역시 다역을 맡은 바리톤 최진혁 등이었다. 출연자 대부분이 합창단 등 직장이 있거나 바쁘게 사는 분들이어서매주 1,2회 씩 연습하다 보니 연습이 느리게 오랜 기간 진행되었다. 장기간의 연습이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성악가들이 작품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고, 안면이 있는 성악가들이 모여서 3-4개월 동안 드문드문 연습을 해나가다 보니, 출연진들 사이가 더 가까워져 끈끈한 앙상블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10월 들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안무, 무용수, 무대감독,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조명 디자이너, 음향 디자이너 등 추가 출연자와 스탭들이 한 사람 두 사람 결합하기 시작했다. 합류하는 스탭들은 연습을 보면서 하나 같이 작품에 빠져들었다. 연출 장수철 선생님과 나는 즐겁게 연습하면서 자율적인 분위기를 가져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다가, 오랜 연습 기간 동안 출연진의 분위기도 특별히 좋았고, 작품도 기존의 창작오페라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로 따뜻한 느낌이 충만해서인지 모든 출연진, 연주자들, 스탭들이 모두 작품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마케팅이었다. 홍보 기획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창작오페라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정말 바닥이었다. 언론도 관심이 없었고, 전적으로 나의 1인 프로덕션으로 제작되다 보니 충분한 홍보비를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9월 중순에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시연회를 갖기도 하고, 공연 초반에 초대도 열심히 하면서 공을 들였다. 그럼에도 첫 공연은 관객 200명이 못 되었다. 그런데 하루 하루 관객이 늘어났다. 8일 동안 관객이 꾸준히 늘고 늘어, 마지막 공연은 500여명 관객의 뜨거운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한 팀의 출연진으로 8회 연속 공연은 창작오페라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고, 관객들을 커튼콜로 불린 <복 많이 받으세요>를 따라 부르며 행복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다. 출연진 6명은 모두 나름대로의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지만 묘한 매력을 발휘한 박태영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그 당시 마침 합창단 활동을 그만 두고 막 뮤지컬 배우를 시작하려는 시점이었던 윤승욱은 연기의 구심점이 되어 주었다. 주인공 진이 역의 서승미는 가장 많은 노래를 소화하며 안타까운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마감해 박수를 받았고, 시골 처녀 경이 역의 박금란은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관객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았다. 손님과 다역의 이선린과 최진혁은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개인 프로덕션에 무명의 성악가들이 출연한 코믹오페라 <테이크 아웃>에 대해 언론도, 기관도, 오페라 계에서도 주목하지 않았다. 마지막 공연에 그나마 객석을 채웠지만, 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이듬해 2012년부터 빚을 갚느라 엄청 고생을 했다. 일시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출연자와 스탭들에게 양해를 구해 단계적으로 갚아나갔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필요한 시기마다 생각지 못한 작업 의뢰가 들어와서, 그런 수입으로 하나씩 해결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코믹오페라 <테이크 아웃>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나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음악극 작업을 시작했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던 나에게, 그 동안 축적된 경험과 재능을 종합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음악극이 가장 중요한 분야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현수
극작가. 가장 가까운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코믹오페라 <테이크 아웃>, 음악극 <모차르트와 모짜렐라의 마술피리 이야기> 등의 극작을 맡았다.
장수철
연출가. 내 음악을 전적으로 신뢰해 주시고 가장 많은 내 작품을 연출해 주셨다. <페페의 꿈>, Classic Music Drama <프록스(FROGS)>, 코믹오페라 <테이크 아웃>, 오페라 <로미오 대 줄리엣>, 음악극 <모차르트와 모짜렐라의 마술피리 이야기> 등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