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다가가기(12)
글: 신동일(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오늘날 산업화된 사회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서양식 음악(모든 대중음악을 포함하여)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할 수 있게 만든 시초가 된 작곡가입니다. 그것은 바흐가 고안해 낸 “평균율 조율법” 때문인데, 이것 때문에 우리가 온갖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는 음악들이 그런 형태로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균율 조율법”에 대해서는 따로 기회를 만들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바흐는 또한 작곡기법과 형식에 대한 기초를 세워서, 모차르트, 베토벤을 비롯한 수많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흐는 또 다양한 악기 편성을 위한 여러 가지 작품들을 남겼는데, 서양음악사에 모범이 된 작품들이 많습니다. 특히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소나타(3곡)와 파르티타(3곡), 무반주 첼로 독주를 위한 6개의 모음곡은 작곡 당시로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형태의 작품이었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십몇년 전 작품의 일부가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게 된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의 특별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7~18세기 바로크음악은 기본적으로 “통주저음”이라는 반주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통주저음은 보통 피아노의 전신으로 알려진 하프시코드와 첼로, 베이스 등이 담당하는데, 악보에 적어놓은 숫자를 보고 즉흥적으로 연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기타 코드 연주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더구나 통주저음으로 반주 역할을 하는 첼로를 독주 악기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반주 악기로만 취급되던 첼로를 독주 악기로 하여 반주도 없는 연주곡을 쓴다는 것은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바흐는 35세 전후인 1820년 전후부터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바흐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6곡이나 작곡하면서, 음악적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첼로가 연주할 수 있는 다양한 주법들을 폭넓게 활용했는데,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첼로 연주법을 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흐의 독창적인 <무반주 첼로 모음곡>들은 지나치게 어려운 연주법 때문에 한 동안 첼로 연습곡처럼 취급되다가 바흐가 세상을 떠난 뒤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바흐가 직접 쓴 자필 악보도 분실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몇백년이 흐른 뒤인 19세기 말, 바르셀로나 음악원에 다니고 있던 13살의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가 한 서점에서 낡은 필사 악보를 발견합니다.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필사 악보였습니다.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보이고 있던 파블로 카잘스는 이 작품에 매료되어 10년 이상 연구한 뒤, 20대에 처음 연주하여 세상에 선을 보입니다. 그리고 계속 자신의 연주를 다듬고 연구하여 60세가 되어서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녹음하기 시작하여, 63세가 되던 1939년에 6곡의 녹음을 마쳤습니다. 카잘스가 남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음반은 지금까지도 이 작품 모범적인 연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파블로 카잘스가 아니었다면 현재 가장 사랑받는 첼로 독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영원히 잊혀졌을 지도 모릅니다.
마치 <쥐라기 공연>처럼 화석을 발견해 되살린 듯한 과정을 거쳐 우리 곁으로 다가온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지금까지 수많은 첼리스트들에 의해 다양한 연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16세기를 거쳐 17세기 초에 모음곡 형식이 확립되어 갑니다. 우리가 보통 “suite”라고 부르는 모음곡은 원래 몇 개의 “춤곡”을 묶어서 연주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 모음곡 형식은 주로 프랑스와 독일을 통해 발전해나갔는데, 프랑스 춤곡들을 중심으로 일정한 스타일로 양식화됩니다. 그래서 “모음곡”에 필수로 포함되어야할 춤곡들과 그 순서가 정해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음곡”의 기본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알라망드(allemande) - 쿠랑트(courante) - 사라방드(saraband) - 지그(gigue)
이렇게 춤곡을 모은 “모음곡”은 좀 더 발전하여 네가지 춤곡 외에 다른 춤곡들도 작곡가의 취향에 따라 포함되곤 하였는데, 이를 “갈란테리(galanteries)”라고 부릅니다. 자주 포함되던 갈란테리에는 “미뉴에트(minuet)”, “가보트(gavotte)”, “부우레(bourrée)” 등이 있고, 때때로 알라망드 앞에 “전주곡(prelude)”이나 “서곡(overture)”이 추가되기도 하고, 중간에 선율 위주의 “에어(air)”가 포함되기도 합니다.
모음곡은 처음에는 주로 독주 악기나 실내악곡을 위해 작곡되었는데, 바흐는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모음곡” 형식에는 “Suite” 외에 “Partita”도 있습니다. 16세기에 등장한 “파르티타(Partita)”는 원래 독주곡을 위한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됐는데, 17세기가 되면서 바흐 등 몇몇 작곡가들이 “Suite”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형식도 “Suite”와 비슷하게 춤곡을 엮은 모음곡 형식을 사용했습니다. 단지 “파르트타”는 주로 독주 악기를 위한 모음곡의 제목으로 사용했습니다.
18세기 중반 이후 “모음곡”은 연극 부수음악을 모은 작품의 제목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19세기 이후에는 발레나 오페라의 발췌곡을 모으거나(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모음곡, 오페라 <카르멘> 모음곡 등) 특정한 소재를 가진 표제음악(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라자데>, 영화음악 발췌곡(프로코피에프의 <키이제 중위> 등), 또는 소나타 외의 자유로운 형식의 모음곡(바르톡의 <피아노 모음곡> 등) 등 다양한 형식의 모음곡들이 작곡되어 대중의 흥미를 끌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