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다가가기(4)
글: 신동일(작곡가)
독일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주로 활동했던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손꼽히는 작곡가입니다. 특히 예술가로서 작곡가의 태도와 사회적 위치 등은 베토벤 이후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귀족이나 교회의 노예처럼 살았던 작곡가(음악가)들은 베토벤 이후 스스로 독립적인 예술가임을 깨달았고,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적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동동한 자격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베토벤은 사는 동안 500여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 널리 연주되는 유명한 곡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9곡을 작곡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피아노가 반주하는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가 아닙니다. ‘바이올린이 피아노를 도와서 연주하는’ 피아노 중심의 음악이 바이올린 소나타였습니다. 베토벤도 처음에는 피아노의 역할이 더 중요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다가, 다섯 번째 소나타를 쓰면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역할이 균형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 이후 후세에 작곡된 많은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2중주’라는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베토벤의 다섯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는 봄처럼 따뜻한 느낌과 화사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하여 <봄>이라는 제목을 얻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피아노 소나타나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3-4개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 역시 4악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악장은 빠르게 연주하라고 되어 있지만, 부드러운 멜로디를 중심으로 다양한 악상이 펼쳐집니다. 제2악장은 느리고 따뜻한 분위기로 연주되고, 스케르초인 제3악장은 경쾌한 리듬을 중심으로 격렬한 악상이 번갈아 연주됩니다. 제4악장 역시 빠르게 연주하라고 되어 있는데, 역시 부드러운 선율을 중심으로 경쾌하게 흘러가는 음악입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30세가 되면서 뛰어난 작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는데, 다섯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 <봄>은 31세 때 작곡했으니, 베토벤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작곡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이때부터 귓병이 나서 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베토벤은 이 곡을 작곡한 이듬해, 32살 때 귓병이 나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유서를 쓰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고통을 이겨내고 수많은 명곡을 남긴 위대한 작곡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 음악상식: 작품 번호
노래가 없는 연주곡이 발달한 클래식 음악에는 제목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교향곡 제1번, 피아노 소나타 제2번, 이런 식으로 어떤 형식의 곡을 몇 번째 작곡했다는 정도로 제목을 대신하곤 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연상할 수 있는 제목이나 참고가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음악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겠다는 작곡가들의 생각이 반영된 관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의 제목은 교향곡 제1번과 같은 번호와 그 작품의 주된 조성을 표기한 뒤 “작품 번호”를 붙입니다. 작품 번호는 “Opus Number”라고 하는데 약자로 Opus 또는 Op.라고 표기합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봄>의 정식 제목은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바장조 작품 24(Violin Sonata No.5 in F Major Op.24)입니다. 이 “작품 번호”(Opus Number)는 원래 작곡가 자신이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 번호란 사실 “출판 번호”입니다. 출판사에서 그 작곡가가 몇 번째 출판한 작품인지 번호를 붙여 나간 것이 “작품 번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작품 번호가 대개 작곡 순서가 일치하지만, 가끔 나중에 작곡된 곡이 먼저 출판되는 경우도 있어서 작품 번호와 작곡 순서가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Opus Number 외에 음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붙인 여러 가지 작품 번호들도 있습니다. 베토벤의 경우 정식 출판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Woo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1955년 독일의 게오르그 킨스키(Georg Kinsky)와 한스 함(Hans Halm)이라는 학자들이 베토벤의 전 작품을 정리하여 목록을 만들면서 발표한 것입니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악보가 너무 여기저기 흩어져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전혀 정리가 안 되고 있었는데, 쾨헬(Ludwig Ritter von Köchel)이라는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가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연구, 정리해서 작곡 순서대로 K. 번호를 붙여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바흐의 작품에는 BWV., 슈베르트의 작품에 D. 번호 등이 붙어 있습니다. 모두 후대에 학자들이 연구해서 붙인 번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