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하기에 부르는 이름
물컹하고 비릿하며 맛이 없는 민물고기 향어.
키 180cm에 몸무게 100kg인 자신의 아들을 맛이 없어 아무도 찾지 않는 향어라 비유하는 교수가 있다.
어깨는 한껏 솟아 목을 앞으로 죽 내밀고 허허 웃는 교수님의 모습이 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대체 뭘 말씀하고 싶으신 건지 정말 자알 듣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통통 튀는 탁구공 같아서 수업 내내 머릿속에서 퍼즐 맞추기를 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강의하시는 교수님을 보며 낙천과 비관이 한 끗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직선상에서 존재하는 구조라기보다는 원의 형태로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교수님은 한 학기 동안의 과제를 설명해 주시며 학생들이 쓰게 될 비평문이 있다고 하셨다. 맛있는 빵(=잘 쓴 시)을 먹으며 든 자신의 감상을 경험에 빗대어 쓰면 된다고, 가장 자신만의 것을 잘 표현한 사람이 좋은 점수를 가져가게 될 것이라 하셨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고민해 봤다. 나만의 것은 무엇일까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고 마음이 금방 한곳에 머물렀다. 아마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가장 잘 그려낼 수 있을 테니, 그렇다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우리 집 양사리일 것이다. 그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냄새 모든 것을 사랑한다.
어렸을 때는 집 주변을 땀이 나게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다. 우리 집은 '동네'랄 것도 없는 외딴섬 같은 곳이었다. 다행히 아빠는 시골집을 지으면서 예쁜 정원도 함께 만들어놨다. 이건 우리를 외딴섬으로 데려온 아빠의 의무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원은 보드라웠던 잔디들과 계절이 다르게 물드는 두 그루의 단풍나무, 크고 두꺼운 소나무 두 그루 그리고 그 밑에 파란색 그네가 있던 우리 자매의 놀이터가 되었다.
집 앞 하얀색 시멘트 바닥에서 뛰놀다 넘어지면, 손바닥 위엔 하얀 돌조각들과 까진 피부 위로 올라온 피가 섞여 텁텁한 쇠 냄새가 났었다. 단풍나무 위로 올라가 파스거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고, 언니랑 비밀 흙무덤을 만들어서 보물들을 숨겨놓기도 했다. 그러다 저녁 6시 반 즈음 읍내로 가는 마지막 마을버스가 지나갈 때면 된장찌개 냄새가 났고 자연스러운 허기짐을 따라 집에 들어가곤 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가랑이 찢어지며 살다 보니까 이제는 1년 중 양사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채 한 달이 안 되는 것 같다. 얼마 전엔 아빠 생신 겸 가정의 달 겸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다. 집에 내려가면 내가 무한히 유치하고, 자유롭고, 본능적이고, 솟는 에너지를 필터 없이 내보낼 수 있다. 가족들은 그런 롤러코스터 같은 나를 불안해하지만 나는 그 해방감이 좋았다. 언니는 그런 나를 이기적이라고 했고, 엄마는 불안하다고 했고, 막내동생은 안쓰럽다고 했다. 그곳에서 나의 자유로움이 그들의 눈엔 결핍으로 비쳤지 싶다. 근데 이번엔 많이 달랐다. 내려와 있는 동안 서울에서의 압박들이 여전히 이어졌고, 그 무게는 겹쳐오는 감정들을 차분히 누르고 있었다. 얕게 깔린 우울감이 삐질삐질거렸다. 가장 반짝인다고 여겼던 것들이 향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물컹, 비릿, 노맛. 아무도 찾지 않는 무가치의 무엇...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전과 달라진 건 맞다. 세상 어떤 것도 변하는 건 당연하지만 달갑지는 않다.
교수님이 그렇게나 악평하셨던 향어는 사실 회로 먹으면 꼬들하기도 오독거리기도 하는 마니아층이 두터운 생선이라고 한다. 사랑받기에 충분함에도 물컹거린다고 치부했다. 가끔은 너무 소중하고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내 손 안에 꽉 쥐고 품어 갈 수 있는 소유물로 착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등한시 할 때도, 별 것 아닌 것 마냥 여기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꽤나 높은 확률로 내가 소유하려 했던 것들은 그 순간에도 고유의 가치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변한 건 나의 불안지수일 뿐.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하는 것은 변함없이 그자리에, 여전히 사랑스러운 존재로 남아있을테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집 양사리는 그대로 있다. 여전히 그곳은 쏟아져나오는 묵혀진 에너지들을 한껏 품어줄 부모님과, 질깃한 풀들과, 뭉글한 추억들이 날 반긴다. 변한 건 나의 불안지수일 뿐. 노력해야 한다. 사랑하는 것 앞에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변한 건 나의 불안지수일 뿐이라고 끝없이 되뇌야 한다. 그래야 언제든 변해버릴 한없이 가벼운 그 속성 앞에서 영원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