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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 Jul 21. 2024

그럴 수 있는 이웃

후덥지근한 여름날 우리 집 화장실에선 담배냄새가 난다. 오래 맡기 어려운 찌든 담배냄새가. 아래층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과 그녀의 딸이 실내흡연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흡연자가 한 명도 없어서 담배냄새가 올라올 때면 숨을 참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곤 한다. 아예 화장실 문을 닫고 있을 때도 많다. 나는 담배냄새가 올라오는 화장실이 싫었다. 손님이 오셨을 때 화장실에서 담배냄새가 날까 초조하게 마음을 졸여야 하는 것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아랫집에 항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담배라는 단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조심성이 없었다. 성질은 급한데 주변을 잘 살피지는 못했다. 벽에 부딪히고, 물건을 떨어뜨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했다. 핸드폰도, 이어폰도 중력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은 듯 툭하면 바닥에 떨어졌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트리에 있던 장식들이 떨어지며 떼구르르르르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TV앞에는 골프연습을 하는 아빠 때문에 골프공들이 자주 모여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가며 실수로 골프공을 차곤 했고 다닥다닥 붙어있던 골프공들은 소란스럽게 주변으로 흩어졌다. 내가 몇 번의 층간 소음을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아랫집은 이 소음에 대해 민원을 넣은 적이 없었다.


12살 때 이곳에 이사를 와서 21살이 될 때까지. 아랫집 할머니와 딸은 나와 동생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 역시 할머니와 딸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전부 보았다. 그들의 옷차림새, 말투, 주로 어떤 음식을 장을 보는지, 성당은 몇 시에 나가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학교를 언제 가는지, 무슨 아이스크림을 먹는지 자세히 알았다. 친척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나를 봐왔기 때문이다. 

아랫집 할머니는 우리가 치는 피아노소리가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성가를 부르는 모습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시기도 했다. 할머니의 딸은 동물보호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동네 고양이들에게 집을 만들어주려고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녔다. 종종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그녀는 오리털 패딩보단 솜으로 된 패딩을 입고 다녔다. 가죽가방을 드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딸의 활동에 호기심을 가지며 먼저 질문하기도 했고 분명 복 받을 거라면서 다정한 말을 건네기도 했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녀와 아래위 층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아래층에 동물 보호 운동을 하는 사람이 살다니. 내가 사는 곳이 어쩐지 특별해진 듯했다.

아랫집도 우리 집도 밖에서 보면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타인의 안부를 먼저 묻기도 하고. 저 멀리서 사람이 걸어올 때 열림버튼을 누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이웃이라서 참 감사한 삶이다’ 엄마랑 대화하고 집에 도착하면 담배냄새를 맡는다. 그들은 우리와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면 거슬리는 소음을 듣게 되겠지. 서로의 치부는 서로만이 알고 있었다. 참하고 바른 모녀가 실은 화장실에서 자주 담배를 피운다는 것. 인사성이 바른 가족이 자꾸 물건을 떨어뜨려 아랫집을 피곤하게 한다는 것. 우리만 아는 비밀들. 암묵적으로 지켜주고 있는 비밀들.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사건을 뉴스에서 본다. 그럴 때면 아랫집 할머니와 딸이 생각난다. 우리의 소음을 들으면서도 모른척해주는 그들이. 세상에 정말로 완전무결한 사람이 있을까. 타인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사람이 정말로 존재할까.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 거겠지. 우리의 관계는 타인이 보기에 불편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틀린 관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럴 바엔 차라리 둘 중 하나가 그만두지. 쯧쯔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무렴 뭐 어떤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여전히 화장실문을 열면 담배냄새가 난다. 나는 지금도 조심성이 없다. 이러한 행동들이 서로를 향한 보복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9년째 이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럴 수 있지’

우리 가족이 자주 하는 말이다. 아랫집 식구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요즘 세상에 꼭 필요한 사고방식 일지도 모르겠다. 사소하고 작은 실수에 대해선 웃으며 넘어가줄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애초에 나 역시 선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니까. 완전한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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