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AI에게 위로를 구하다

엥케이리디온?

by 오중훈



잠들려고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바빠진다.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천장을 보다가 불쑥 튀어 오른 질문이었다. 두려운 건지 허전한 건지 모를 감각이 가슴 어딘가를 건드렸고, 나는 결국 폰을 들었다.


AI에게 물었다. “이럴 때 읽을 만한 책 뭐 있어?”


돌아온 답은 세 권이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자기 앞의 생, 그리고 엥케이리디온.


집에 없는 책들이었다. 밀리의 서재를 켰다. 세 권 중 엥케이리디온만 있었다. 그냥 읽기 시작했다.


아마 내일은 못 읽은 두 권의 책을 사러 알라딘에 갈 것이다. 책이란 게 그렇다. 한 권을 읽으면 두 권이 늘어난다.


생각해 보면 이게 AI의 진짜 장점인 것 같다. 내가 평소 절대 손 뻗지 않았을 세계로 데려다준다는 것. 나 혼자였다면 새벽 불안에 유튜브나 뒤적이다 잠들었을 텐데, AI 덕분에 2,000년 전 노예 철학자의 말을 읽게 됐다. 전혀 모르던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것,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소개해주는 것. 그게 내가 AI를 곁에 두는 이유 중 하나다.


사실 얼마 전에 브런치에 글을 하나 썼다. 제목은 거창하게도 나는 잘 살고 있다였다. 그 글을 쓸 때만 해도 꽤 확신에 차 있었는데, 불과 며칠 뒤 새벽에 천장을 보며 잘 살고 있는 건가? 를 묻고 있으니. 어쩌면 이건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답을 찾았다 싶으면 또 흔들리고, 흔들리다 보면 또 찾고. 인간이란 참 비효율적인 존재다.


잠깐, 밀리의 서재 얘기부터


사실 나는 근본적으로 종이책 사람이다.

바스락거리는 페이지 넘기는 소리,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 책을 펼쳤을 때 올라오는 그 특유의 냄새.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 전자책은 편하긴 한데 뭔가 독서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덜 든달까. 책을 읽었다기보다 화면을 봤다는 기분이랄까.


그런 내가 밀리의 서재를 구독한다.


변명을 하자면, 밤이 문제다. 불 꺼진 방에서 뒤척이다 갑자기 책이 읽고 싶을 때, 불을 켤 수가 없지 않은가. 그 찰나에 아이패드와 밀리의 서재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화면 밝기 최저로 낮추고, 다크 모드로 설정하면 옆 사람 눈치 안 보고 새벽 독서가 가능하다. 어둠 속의 비밀 독서실이 따로 없다.


구독료가 아깝냐고? 한 달에 한 권만 읽어도 본전은 뽑는다. 통신사 결합 상품을 이용하면 더 저렴하게 쓸 수 있으니 아직 안 쓰고 있다면 한 번쯤 알아볼 만하다. 뭐, 이 글은 밀리의 서재 광고가 아니라 에픽테토스 얘기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서론이 길었다.


플라톤 이후, 철학은 어디로 갔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던 시절, 철학은 거대한 질문을 다뤘다. 진리란 무엇인가,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가, 이데아란 무엇인가. 세상을 바꾸려는 야망이 철학 안에 살아있었다.


그런데 그 시대가 끝났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이 흥하고 무너지고, 로마가 지중해를 집어삼키면서 세상은 개인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규모를 한참 넘어섰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자 더 이상 새로운 플라톤이, 새로운 공자가 등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질문이 바뀌었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나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로.


바로 이 시기에 스토아 철학이 등장한다. 헬레니즘 시대, 서양철학의 주류가 된 스토아학파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만드는 것. 그것이 스토아의 핵심이었다.


생각해 보면 시대가 철학을 만든 셈이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도 제국의 군화 소리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


노예가 쓴 철학 핸드북


에픽테토스(Epiktetos, 50~135년경)는 스토아 철학자 중에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노예였다.

로마 황실의 비서관 노예로 태어나, 주인에게 다리를 부러뜨리는 학대를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자유를 얻은 뒤에는 철학 학교를 열었고, 훗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그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


황제보다 더 오래 읽히는 철학을 쓴 사람이 노예 출신이라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가 쓴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은 고대 그리스어로 ‘소책자’ 또는 ‘핸드북’이라는 뜻이다. 출판사가 붙인 부제는 이렇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을 때.


새벽 두 시의 내 심정을 정확히 꿰뚫는 제목이었다. 출판사 마케터, 일 잘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읽다 보니 어딘지 낯설지가 않다. 로마 시대의 자기 계발서라고 해야 할까. 저자가 말씀하시는 대로 살아가면 정신적으로 행복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책장을 넘기다 이런 생각도 스친다.


과연 이 책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을지는 의문?


에픽테토스는 첫 장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읽다가 갑자기 뭔가 찔리는 느낌이 왔다.


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의 평온은 거기서부터 흔들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새벽에 잘 살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욕망과 혐오 사이


그는 또 말한다.

욕망은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고, 혐오는 원치 않는 바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원하는데 얻지 못하면 실망스럽고, 원치 않는데 피할 수 없으면 괴롭다고.


단순한 말이다. 그런데 단순한 말이 새벽에는 유독 날카롭게 박힌다.


세상만사 바라는 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고, 되어가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그는 조용히 권한다. 그러면 삶이 평온합니다,라고.


되어가는 대로 받아들인다.


쉽게 쓰인 문장이지만, 실천은 평생이 걸릴 것 같다. 아, 또 평생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뱉어왔던가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꽤 구체적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목욕을 빨리 끝낸다고 “목욕하는 방법이 틀렸다”라고 하지 말고, 술을 많이 마신다고 “안 좋은 습관”이라고 하지 말라고.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르면서 다 아는 것처럼 판단하는 실수를 하지 말라고.


그건 그냥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니까?라고.


읽으면서 슬며시 고개가 내려갔다. 나는 꽤 자주 그 실수를 하는 편이니까.


그리고 이 구절에서 완전히 멈췄다.


철학적 명제를 모르는 사람들과 어쩌다 대화할 때에는 최대한 침묵을 지키십시오. 자신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내용을 발설할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소화도 안 된 채로 뱉어왔던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 범주에 들어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일단 계속 쓰기로 했다. 에픽테토스 선생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숙제


밤새 뒤척이며 시작한 독서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얇은 책이다. 하지만 새벽 내내 줄을 그었다. 밀리의 서재는 화면상 형광펜 긋기가 된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2,000년 전에도 사람들은 똑같이 불안했구나.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남을 판단하고, 뱉지 말아야 할 말을 뱉고, 그러면서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에픽테토스가 그 시대 로마인들에게 했던 말이 새벽 두 시 한국의 나에게도 그대로 닿는다.


인류의 불안은 참 성실하게도 이어져 왔다.


얼마 전 나는 잘 살고 있다는 글을 썼다. 그때는 진심이었다. 지금도 진심이다. 그런데 이렇게 새벽마다 흔들리는 걸 보면,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한번 답을 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답을 찾았다 싶으면 또 흔들리고, 흔들리다 보면 또 붙잡고. 어쩌면 이건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질문인지도 모른다.


그게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2,000년 전 로마 사람들도, 노예였다가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도, 다들 그렇게 살았을 테니까.


흔들린다고 잘못 사는 게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계속 묻는 것, 그게 어쩌면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AI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책이다. 새벽의 불안을 들고 찾아간 AI가, 내가 평소 절대 손 뻗지 않았을 세계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게 AI의 진짜 쓸모인지도 모른다. 검색도 해주고, 코딩도 해주고, 보고서도 써주지만, 가장 고마운 건 그것이다. 내가 모르던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것. 내 취향의 울타리 밖으로 슬쩍 밀어주는 것.


오늘 알라딘에 가야겠다. 나머지 두 권을 사러. 또 흔들릴 새벽을 위해…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신혜연 옮김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