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해본 사람만 할 수 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를 철학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특정 유형의 말이 불편하다.
"나이 먹어보니까 돈이 다가 아니더라고요."
"이제는 사랑 같은 거 필요 없어요. 마음이 편한 게 최고지."
"결국 다 부질없더라."
이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용히 한 가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걸 끝까지 해보셨나요?
"치열하게 사랑해보지도 않고 사랑이 필요 없다는 사람,
사업을 끝내보지 않고 돈이 다가 아니라는 사람
그건 깨달음이 아니라 합리화다."
돈을 진짜 벌어본 사람이 돈의 허무를 말하면 그건 통찰이다. 버핏이 "돈은 행복을 사지 못한다"고 말할 때와, 단칸방 월세를 못 내본 적 없는 사람이 같은 말을 할 때 그 무게는 다르다. 전자는 경험에서 나온 비어냄이고, 후자는 닿지 못한 것에 대한 체념을 포장한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너무 자주 혼동한다.
흥미롭게도 이 현상은 자기계발 시장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한국의 자기계발 생태계를 보면 묘한 구조가 있다. 강의로 돈을 버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정작 그 분야에서 사업을 키워 엑시트한 사람들은 유튜브에 나오거나 책을 쓰지 않는다. AI 바람이 불어도 마찬가지다. AI로 실제 업을 만들어 돈을 번 사람보다, AI 사용법을 파는 사람이 먼저 눈에 띈다.
왜 이런 구조가 생길까. 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바쁘다. 사업이 잘 되고 있으면 굳이 무대에 나올 이유가 없다. 그들의 시간 기회비용은 강연료나 인세보다 훨씬 높다. 유튜브 채널 운영에 쓸 에너지로 다음 딜을 만든다.
둘째, 그리고 이게 더 핵심인데 방법론을 파는 것이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실패 리스크가 없다. 수강생이 실패해도 강사는 다음 기수를 모집한다. 그래서 시장은 자연스럽게 '검증되지 않은 조언자'로 채워진다.
이 구조는 자기계발 시장이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강의를 들은 수강생이 또 강사가 되고, 그 강사의 강의를 들은 사람이 또 강사가 된다. 원본은 어디에 있을까. 때로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의 이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증명한 사람의 말이
결국 오래 남는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도 아직 끝을 못 본 일들이 많다. 전자투표 플랫폼도, 새로운 컨설팅 모델도, 아직 진행 중이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결국 다 부질없더라"고 말하지 못한다. 부질없다는 말을 할 자격은, 적어도 한 번은 그 끝까지 가본 사람에게 있다고 믿으니까.
해보지 않은 포기에 이름을 붙이지 말자. 그건 철학이 아니라 그냥 포기다.
사랑도 많이 해보고, 돈도 벌어보고, 술도 마셔보고 나서 말하라.
그 전까지는 그냥 아직 안 해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