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江船火燭明(강선화촉명)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좋은 비는 그 내릴 시절을 알고 있나니
봄이 되면 내려서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구나.
비는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내리나니
사물을 적시거늘 가늘어서 소리가 없도다.
들길은 낮게 드리운 구름과 함께 캄캄하고
강 위에 떠 있는 배의 고기잡이 불만 밝게 보인다.
날 밝으면 붉게 비에 젖어 잇는 곳을 보게 되리니
금성관에 만발한 꽃들도 함초롬히 비에 젖어 있으리라.
당나라의 시인으로 이백과 더불어 우리와 친숙한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로 비 내린 봄의 정서를 이렇게 잘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비롯한 586세대들은 한자(漢字)를 배우고 자랐다.
한문 수업을 받고 국어와 고전수업시간에도 한문이 한가득 이었다. 한자로 가득한 신문을 읽기도 했고 할아버지 제사 때는 지방을 한자로 직접 쓰기도 했었다.
한때는 우리말을 써야 한다며 한자 없는 신문도 등장하고 우리말 쓰기 운동이 계속되었지만 한자나 우리말의 사용 빈도가 그 후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두보의 춘야희우를 떠올린 것은 갑자기 영화배우 정우성 주연의 호우시절이라는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중국 쓰촨 성의 성도에 두보의 사당이 있다는 것도 그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다.
90년대 후반 무역부 신입 시절 나는 쓰촨 성의 성도로 해외 출장을 갔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도의 날씨는 엄청 추웠고 음식은 아주 맵고 짠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성도에서의 출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동료와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성도의 여기저기를 여행했었다. 중국의 물가가 저렴하다는 판단으로 자전거 인력거로 상당히 먼 거리를 돌아다녔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요금을 지불하려고 보니 처음 얘기한 금액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요구하는 게 아닌가?
인력거 주인이랑 요금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주변의 중국인들이 온통 인력거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 중의 한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중국어라고는 '니하오'랑 '워 아이니' 그리고 '시에시에' 밖에 모르던 나로서는 앞이 막막했다.
그때 구세주처럼 내 뇌리를 스친 기억은 고등학교 한문 수업시간에 배운 '自'와 '至'의 사용법이었다.
나는 '自출발지 至도착지'라고 노트에 써서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우리의 이동 경로를 설명하고 인력거 주인이 요구하는 요금이 합당한 지 물었다.
다행히 그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바가지요금을 피하고 제대로 된 요금만 지불하고 그 상황을 모면했었다.
학창 시절 고전수업에서 만났던 두보나 도연명의 주옥같은 시가 그리워지는 건 내가 한문이나 한자 세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성도를 가게 된다면 두보의 사당을 꼭 찾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