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영화 속의 변산이 잊혀 갈 무렵 다시 내 기억 속으로 소환된 것은 며칠 전 지인들과의 모임 장소를 변산으로 결정하면서 였다.
그리고 어제는 변산에서 오래된 벗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네비를 검색해 대충 변산까지 운행시간을 가늠해 보니 세 시간이 넘는 장거리다. 운전을 후배가 하는 덕분에 천천히 음미하며 변산을 찾아가는 호사를 누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모임을 갖는 우리네 모임은 대학시절 같은 하숙집에서 생활하던 같은 대학교 형과 후배, 나까지 셋이서 매년 철 바뀔 무렵 전국을 무대로 갖는 친목 모임이다. 다들 가정을 이루어 중년의 나이를 넘겼지만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변산에서 모이기로 하고 맛집을 검색해보니 백합탕이나 바지락죽 같은 해산물을 기본으로 하는 식당 일색이었다.
아무래도 갯벌 근처의 바닷가라 그런가 생각되었다.
저녁 메뉴는 숙소 근처에서 회와 해산물을 맛보고 다음날 아침은 속풀이를 겸해서 해산물 죽을 먹기로 마음먹었다.
모임 다음날 투어 할 장소는 고군산군도의 선유도와 채석강, 그리고 천년고찰 내소사로 정했다. 변산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둘러볼 곳이 많았지만 제한된 시간으로 몇 곳만 골라야 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항상 새로운 여행지에서 느끼는 생경함이 기대감보다 앞서는 딜레마에 빠지는데 그것은 아마도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으로 여행지의 정보를 습득할 기회가 너무 많은 탓이 아닐까 싶다.
살아오면서 서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인천 월미도와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 그리고 고흥의 나로도는 대학시절 한 번쯤 갔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장소들이 내가 서해에 대해 알고 있는 경험의 모든 것이었다.
오늘 변산반도에서 만난 서해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의 멋진 곳이었다.
변산 해수욕장 인근의 펜션에 여장을 풀고 근처의 가성비 좋은 횟집에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겼다. 여태 한 번도 먹어볼 기회가 없었던 민어회와 지리, 그리고 다양한 해산물의 퍼레이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창밖에 펼쳐지는 일몰은 덤이었다.
택시 잡기도 어려워 보이고 대리 운전도 힘들 듯싶어서
3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되돌아오는 장거리의 식당 기행이었지만 모두들 만족할 만한 저녁
만찬이었다.
이튿날 아침은 백합죽으로 속풀이를 했는 데 전복죽에 버금가는 맛있는 죽이었다.
고군산 군도로 향하는 연육교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20킬로미터가 넘는 바닷길을 달리는 기분이란 느껴 보지 않은 이들에게 설명할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진정 이곳이 우리나라의 바닷가인가 싶기도 하고 새만금 방조제의 웅장한 스케일과 기술력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삼국시대 백제의 천년고찰 내소사(來蘇寺)에 들렀다. 내소사는 원래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는데 소래(蘇來)는 '이곳에 오면 소생한다'는 뜻이란다. 잃어버린 마음을 소생시킨다니 진정 변산에서 내 마음을 소생시키는 좋은 여행이었기를 바라본다.